지난 9월, 동리 신재효(1812-1884) 선생의 판소리 필사본 고수 청계본이 완질로 공개되었다. 과거로부터 전승된 판소리 여섯 마당을 개작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 판소리 사설이 어떤 계통으로 형성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국문학적으로 매우 가치가 큰 발견이다.
판소리는 문학과 음악이 결합한 형태로 이러한 장르는 중세기부터 동서양에 편재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프랑스 성당의 수도사들이 순례자를 위해 노래하던 서사시, 샹송 드 제스트와도 비교할 수 있는데 언어의 울림과 철학적 깊이를 음악을 통해 표현한 공통점 외에도 샹송이 교회음악에서 출발해 현대에는 대중가요를 의미하는 것처럼 판소리도 당시 민간 신앙, 무당의 남편인 광대에게서 나와 조선 고종 때 대중 창극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또 샹송 드 제스트가 당시 프랑스 남성들의 것이었던 것처럼 판소리 역시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신재효가 기른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신재효는 동리정사라는 판소리 학당에서 후계를 양성한 지도자였고, 경복궁 낙성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에서 성조가를 지어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하객들의 혼을 빼놓은 창작자이기도 했으며, 여성에게 금기시된 판소리의 길을 열어주고, 춘향가를 남창, 동창으로 구분, 어린 광대가 수련할 수 있도록 소리를 정리해 대본을 마련한 시대를 앞선 개척자이기도 했다. 또 이론가이자 연출자로서 광대가를 통해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라는 판소리 이론을 정립하여 당시 천민이었던 광대에게 사설의 우아한 표현과 음악적 기교, 그리고 관중을 사로잡는 연기를 가르치는 등 판소리를 한문학과 견줄 만한 예술로 성장시켜 판소리가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민족 문학으로 도약하는데 기여를 했다.
2015년 상영된 조선 최초의 여류 명창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리화가’에 신재효가 등장한다. 도리화가는 신재효가 제자 진채선의 아름다움을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핀 경치에 빗대어 지은 단가로 흥선대원군의 대령 기생으로 들어가 한양에서 돌아오지 않는 채선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예술에 녹인 노래이다.
대원군의 마음을 움직여 마침내 채선의 하향을 허락받은 애틋하고 아름다운 도리화가의 첫 구절로 그의 예술을 소개한다.
“스물네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봄이 되니 구경가세 구경가세 이화도화 구경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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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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