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세에 돌아가셨다. 학력은 없다. 학교를 다니신 적이 없다. 다섯살에 생모가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을 데리고 시집가 버리는 바람에 외숙모 집에 버려졌단다(?).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어 글을 모르는 이 사촌 동생을 사촌 오빠가 몰래 한글을 가르치려 시도했었단다. ‘가 나 다 라 마 바’까지 배우다 외숙모한테 들켜 실컷 두들겨 맞고 그쳤단다. 그리고 부엌과 농사일로 평생을 사셨단다.
인물이 아주 좋으셨다. 당시에도 인텔리라는 멋진 청년을 남편으로 맞았다. 그런데 그 멋진 청년은 멋진 남편은 아니었었나 보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고 경제적 재량권을 전혀 주지 않고 또 작은 부인까지 겪게 했다.
슬하에 아들 셋에 따님 한 분을 두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은 집을 장만하려고 안먹고 안 쓰며 살다가 집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에게 며느리가 셋이 있었다. 그런데 늘 막내며느리를 그리워하고 막내며느리와 같이 있기를 좋아하셨다. 어쩌다 막내아들의 집에 오면 그렇게도 좋아하시고 굽은 허리로 밀고 다니면서 움직이셨단다. 평생 처음 받아보는 매달 용돈(수입)도 교사로 일하던 막내며느리가 자기 월급날마다 주었단다. ‘가 나 다 라 마 바’까지 밖에 읽으실 수 없었던 그분에게 한글을 같이 앉아 깨우쳐 드린 막내며느리. 할머니는 한글을 깨우치신 후 다른 어느 책도 아닌 성경책만을 읽으면서 말년을 보내셨단다.
굽은 허리가 아프셔서 거의 앉아서 밀고 다니시면서 그 할머니는 손자를 볼 때마다 “배 고프시까? 식사 드시시까?(사투리가 심하셨다)”라고 물으셨다. 그리고 또 하루에 몇 번을 봐도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그러면 손자가 소리를 지르며 “밥 먹었어요. 그만 물어보세요!” 한다.
나도 요새 손주들을 만나면 할 말이 “밥 먹었니?” 뿐이다. 전자 게임 이름도 모르고 새로 나온 만화 영화 속의 인물들을 아는 것도 아니라서 나눌 얘기가 없다. 하물며 다른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셨던 할머니의 그 물음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무언가 해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였으리라.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옷을 끌어안고 심하게 울던 그 손자는 할머니가 수없이 하던 사랑의 고백을 그제서야 깨달아서였을까?
<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