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으로 만든 바가지 하나에 길고 짧은 여러 개의 대나무로 된 관이 들쭉날쭉 꽂혀 있는데 마치 봄볕에 생물이 돋아 소생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생(笙)이라 부른다.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을 내는 악기, 생황이다. 입으로 부는 오르간으로 서양에 알려진 공명 악기 생황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17개의 죽관이 바가지에 꽂힌 것이 현재에 이른다. 바가지 모양의 통 가운데 부리 모양의 취구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면 관대 아래에 붙어있는 쇠청이 울리며 소리를 내는데 그 음색이 맑고도 부드럽고 신비하고도 오묘하다.
중국에서 들여온 생황은 중국의 창세신화에서 등장한다. 인간을 창조한 여신 여와는 상반신은 인간이며 하반신은 뱀인 신, 복희와 남매 사이였다. 대홍수 이후 둘만 남은 남매는 부부의 연을 맺고 인류의 시조가 되었는데, 여와는 해와 달, 별의 소리를 합한 우주의 소리를 만들어 세상을 다스렸다.
우리나라의 고대 설화인 마고 설화도 다음과 같이 유사한 내용이 전해진다. ‘이 세상의 처음에는 암흑뿐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하늘과 땅이 나누어졌다.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한 줄기 빛이 나타나 하늘에 비치자, 그 속에서 8가지 소리가 생겨났다. 다시 8가지 소리가 몇천만 번 변화하여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났다. 다시 수천만 년이 지나 8가지 소리가 수천만 번 변화하여 마고가 태어났다. 마고는 이 8가지 소리를 가지고 마고 성을 지어 그 안에서 살았다.’
고려와 조선 전기 제례 아악에 쓰이던 생황은 그 이전에도 연주되었다는 것을 통일신라시대에 주조된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을 통해 알 수 있다. 부처가 설법을 행할 때 부처의 주위를 날아다닌다는 비천이 공후를 타는 선인과 함께 하늘을 오르며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이 동종에 새겨져 있다. 19세기 이후 궁중 밖, 민간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생황은 현재는 주로 피리 연주자나 대금 연주자와 같은 관악 연주자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화성 악기의 특징을 살려 현대음악과 더불어 그 신비로운 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공자가 사랑하던 봉황을 닮은 악기, 봄날의 새싹 탄생을 알리는 정월의 소리가 현대에 울려 퍼지고 있다.
태초에 암흑 속에서 세상을 연 소리처럼 정화되어 탄생하는 새로운 세상을 신비로운 생황의 소리로 그린다.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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