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에게 적당히 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주어지는 순간부터 그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차고,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뭐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남편은 늘 지지해줬고, 나는 그 노력에 따른 결과물들에 성취감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주어지는 일들이 많아지고, 책임감 또한 무거워졌다. 특히 두 어린 자녀의 육아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했으나, 그 와중에도 내 일을 놓지 못했기에 지난 몇 해는 하루하루가 전쟁과도 같았다. 놀아달라는 아이들을 울려가며 이메일을 쓸 때도 빈번했고, 밤이 되면 어떻게든 빨리 재우고 일을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가족들과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나의 모습에 ‘적당히 하라’며 다그치는 남편과 언쟁하는 날도 잦아졌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하고, 육아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만 요구하는 것 같아 화도 났는데, 몇 일 전에는 문득, ‘적당히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최선을 다하라라는 말만 늘 들으며 자랐고, 칭찬에 다소 인색하셨던 부모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몇 해 전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20여년을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 열심히 하는 태도는 학생의 본분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누구 하나 나의 열심과 노력을 칭찬하면 칭찬했지, 비판하거나 말리는 이는 없었다. 이런 나에게 ‘적당히 하라’는 남편의 요구는 너무 생소했고, 어떤 일을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것이 적당한 것인지, 나아가 그 정도를 조절하는 방법도 나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꽤 지쳤고, 시간도, 마음도, 내 전반의 삶도 조금은 더 여유를 가지며 살고 싶다. 삶에 ‘균형’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잘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 고민을 들은 한 친구가 오늘 아침 책 한권을 가져다주었다. 그 에세이 집 제목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다. 너무 위트 있는,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제목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있나? 이 책 읽는 것은 나에게 우선순위일까? 주어진 일들이 있음이 너무 감사하지만, 적당히 균형있게 사는 것은 참 어렵다.
<송현아 (산호세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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