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 듣고 쓰는 단어이다. 그러나 엄청 다른 생각과 기억을 일으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내가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단어였으니 말이다. 살면서 ‘아버지’라는 단어를 거의 20년 가까이 써보지 못했는데, 막상 교회를 가서 보니, 모든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거나 혹은 울면서 쏟아내는 것이 이 단어였다.
하나님도 부를 수 있고, 예수님도 부를 수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란 말은 도통 안나왔다. 어떻게 하나님이 ‘아버지’일 수 있지. 내게 아버지란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를 버린 사람. 엄마와 동생들이라는 큰 책임감을 주고 간 사람. 나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서지 못하게 한 사람. 그 이름 때문에 나를 평생을 쫄게 만들었던 사람. 나는 아버지가 ‘사랑이신 하나님’과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교회생활을 꽤 하고 여기저기 집회를 따라다녀도 여전히 나의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에서 그치고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곤 했었다.
어느 여름 시댁 식구들이 다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한 무엇이 마음에 안들었는지(기억나지 않는다), 남편은 “아버지 없이 자라서 배운 게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던 교회를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교회 문은 열려 있었는지, 벌벌 기어들어간 교회 강단 앞에 앉아서 목놓아 울던 내 소리가 들린 것이 그 다음이었다.
“하나님, 하나님, 들으셨어요! 남편이(사실은 막 욕을 한 것 같다) 내가 애비없이 자라 배운 게 없어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래요. 들으셨어요?!?”
한참을 악을 쓰고 우는데 “그래, 너의 남편 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니?”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남편 아버지는 죽었지요!! 오래 전에요.” “그럼 신영아 네 아버지는?” 나는 갑자기 무슨 뜻인가, 멈칫했다.
잠시 후, 나는 갑자기 오열했다. “네, 내 아버지는 여기 계시지요. 지금 살아계시지요.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나의 아버지고 살아계시고, 나를 버리지도 않으시고, 여기 계시지요. 죽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런 아버지 말고.” “아버지, 아버지, ~~~” 나는 평생 부르지 못했던 ‘아버지’를 그날 그 자리에서 다 부른 것 같다.
<
노신영 (산호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눈물나네요...지금은 평안하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