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미국까지 와서 시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 “시집살이 어때요? 괜찮아요?”. 약 3년간의 시댁생활을 하는 동안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이 두 마디였던 것 같다. “괜찮아요?”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여하튼 이 말은 시부모님과 같이 산다고 하면 늘 듣는 단골 질문이었다. 몇 주 전, 내 집을 장만하며 시댁생활을 ‘일단’ 정리하게 되었다.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던 생활은 이제 조금은 적응이 되는 것도 같지만,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시부모님의 자리가 얼마나 컸었는지 새삼 실감하는 나날들이다.
매일 매 끼니 식사며 집안 살림을 어머님이 도맡아 주셨기에 그 빈자리가 물론 가장 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립고 아쉬운 것은 시부모님의 자리, 그 자체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밝은 얼굴로 손자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러주시고, 사과를 손수 깎아 먹여주셨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이라도 다녀오면 그 짧은 시간의 외출이였음에도 버선발로 뛰어나와 항상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가족 모두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하루종일 주신 사랑이 부족하기라도 하듯 온몸으로 손자들을 안아주시고, 늘 기도해 주셨다. 그렇게 큰 사랑을 주셨던 시부모님이 안계시니 넓은 새집이 더 횡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을 흔쾌히 받아주시고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육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시부모님의 결단도. 또한 시부모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선택했던 우리 부부도. 내가 받았을 많은 질문들처럼 우리 시부모님 역시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걱정과 충고의 말들을 들으셨을까.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함께했고, 함께할 수 있었고, 함께 해냈다.
며칠 전 아버님께 “아버님, 이렇게 지내다가 애들 크고 하면 우리 또다시 같이 살아요” 했더니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하하하, 세라 너도 살아봐라. 그 말 쏙 들어갈 것이다” 하셨었다. 언젠가 시부모님이 또다시 같이 살아주실까. 그동안 시댁 생활에서 받은 깊은 은혜를 꼭 갚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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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라씨는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으로 씨티은행과 딜로이트에서 직장생활을 보낸 후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현재 네살과 두살의 두 아들을 돌보는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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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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