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집 이곳저곳을 손보는 동안, 남편과 소소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터질 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이 시국에 새 집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사려고 실내 쇼핑을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여러가지 볼일을 보라고 시부모님께서 아이들을 곧 잘 봐주시곤 하신다. 어머님은 아이들을 언제든 맡기라 하시지만 며느리인 내 입장에선 마냥 어머님에게 의존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날도 어머님이 아이들을 데려와 맡기고 내 볼일을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괜찮다며 애들을 데리고 꾸역꾸역 집안일을 하던 중이었다. 지쳐서 얼굴 표정이 어두운 나에게 남편은 “그러길래 그냥 엄마한테 애들 맡기라고 했잖아”라며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한마디가 시발점이 되어 부부싸움이 시작됐다. “내 새끼 내가 보겠다는데 왜?”라는 나의 말에 남편은 쉴 틈도 없이 “그렇게 힘들어 할 거면 애들을 맡기라고, 엄마는 데리고 오라고 하는데 왜 굳이 너가 보냐고!” 큰소리를 냈다. 그날 밤, 나는 남편을 불러 서운했던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내 자식을 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당신한테 혼날 일이야?” 그러자 남편은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너가 그렇게 힘들어 할 것 같으면 엄마가 맡기라고 했을 때 맡기면 될 텐데 굳이 애들을 맡기지 않고 왜 고생하냐 이거지. 나는 너가 힘들어 하는 게 싫어” 하는 것이다. 그 말은 맞다.
우리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생각하면 어머님께 아이들을 맡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듣고 싶었던 건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애들 둘 보느라 힘들지. 내가 뭐 도와줄까?’라든지 ‘애들 본다고 고생한다. 너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힘들면 엄마한테 부탁해봐’라던지, 그저 그냥 나의 입장이 되어서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 나를 위로해 줬으면 됐을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한마디’를 남편은 할 줄을 모르고 ‘그 한마디’를 듣지 못한 나는 그 아쉬움을 속으로 삭히지 못하는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드냐는 나와 ‘그렇게 말을 한듯 뭐가 달라지느냐’는 우리 남편.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던가! 결론 없는 부부싸움의 연속에 우리는 다시 육아전쟁 돌입이다.
<안세라 (주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