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까지 집안 깊숙한 곳에서 놀던 햇살이 이젠 일찍 마당으로 나간다. 겨우내 낮게, 깊이 들던 햇살이 이젠 점점 더 높아지는 중이다. 가드닝이 큰 행복인 내게 해가 뜨는 방향과 시간은 중요하다. 그래서 마당 뒤로 동네 산책길이 나 있고, 남향인 우리 집은 꽤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식물이 여섯 일곱 시간의 햇살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남향 마당은 내게 식물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하지만 집 건물을 가운데 두고 동쪽과 서쪽의 마당은 빛이 들어오는 시간도 다르고, 세기에도 차이가 있어, 처음엔 선뜻 계획이 서질 않았다.
텃밭은 서쪽 마당에 두었다. 밭을 꾸밀 만한 공간이 그곳밖에 되지 않아서였지만, 다행히도 옆집과의 거리가 좀 떨어져, 채소가 자라는 여름엔 더 오래 해가 들어 좋았다. 동쪽 마당엔 전 주인이 건물을 따라 회양목(Boxwood)을 심어 놓았다. 깔끔하긴 했지만 좀 무채색의 공간 같아 늘 아쉬웠다. 뭔가 더하고 싶었지만 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 해가 오래 드는 쪽이라면 그동안의 노하우로 적당한 것을 고르거나, 키웠던 것들 중에 맘에 드는 것을 번식해 심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해가 좀 다른 동쪽 정원엔 뭐가 좋을지 몰랐다. 이래서 시작된 그늘에서 잘 자라는 식물 찾기는 내겐 또 다른 가드닝의 세계였다. 동백과 수국은 물론이고, 잎만으로도 꽃만큼 아름다운 호스타(Hosta), 그늘진 곳도 알전구를 킨 것처럼 밝게 해주는 루드베키아(Cone flower), 나무 아래든 건물 귀퉁이 어디든 심어도 짜증 없이 자라는 맥문동( lily turf), 깊은 그늘만 찾는 렌턴로즈까지 모두 동쪽 마당, 그늘진 마당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다. 만약 모든 공간이 햇살로 빽빽했다면 누리지 못할 행복이다.
나이 들며 점점 단단해지는 내 사고의 틀은 “모든 식물은 해를 많이 받을수록 좋다”처럼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많은 부분을 좌우하고, 새로운 시도는 두려움에 주저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되려면 거름을 주고, 가지를 치고, 물을 주는 기본적인 가드닝 말고도, 다른 조건을 인정하고, 그것에 맞는 것을 찾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풍성하고 아름다우려면 힘들더라도,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더라도, 틀에 갇히지 않게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며 살길, 나이 한 살 더한 3월, 나는 소망한다.
<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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