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란 한국 땅을 떠나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 나라를 거쳐 해외에 거주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백일 갓 지난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남편 손 붙들고 떠나오던 99년 10월 당시 김포 공항의 떨리던 출국 때로부터 시작하여, 그간 수많은 항공편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이곳저곳 옮겨다녔다. 이제껏 어느 곳에 있건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국제선을 탈 때의 마음이 가장 편안하면서도 설렌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태평양 상공 하늘길 위에서, 어두운 기내 좌석에 웅크려 담요 덮고 꼼지락거리며 기나긴 시간을 인내하기란 매번 쉬운 일은 아니다. 한해한해 거듭될수록 몸은 찌뿌둥하고 한 거 없이 멍하고 피곤이 몰려온다. 어느새 좌석 앞 스크린 운항 정보에 비행기가 일본을 지나 드디어 대한민국 영공에 진입하는 것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이어폰으로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재생한다. 조용필 님의 ‘서울 서울 서울’. 나온 지 삼십 년이 훨씬 넘은 노래, 귀에서 전해지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인천공항에 착륙 예정이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울려퍼지곤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오래된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어떻게 보면 서울과 무슨 직접 연관이 있을까 하는 노래 가사이지만, 창 밖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되뇌어 따라부르다 보면 여러 상념에 젖어든다. 항상 내 옆자리에 앉아 조잘대며 이착륙시 장난감 비행기를 손에 쥐고 환호하고 기뻐하던 어린 내 아이, 늘 내 무릎을 베개 삼아 곤하게 푹 잠들었기에 깨울까봐 화장실 가기조차 조심스러웠던 시간들이 눈앞으로 냇물처럼 흘러간다. 이제는 더이상 엄마 손이나 무릎이 필요치 않게 쑥 커버린 아이를 추억 속에서 다시 만난다. 한편 한국 왔노라고 불쑥 전화하더라도 반갑게 맞아주는 벗들, 지인들, 아이 덕분에 알게 된 인연들과의 해후를 상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약속과 방문 일정들을 여러번 체크하고, 꼭 사야 할 것들 리스트를 챙기다 보면 어느덧 비행기는 착륙하고 미끄러지듯이 도착 게이트로 향한다.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었구나”를 가슴에 새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한다.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가고 싶은 한국 땅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앉아있는 상상을 자주 해보게 되는 요즘, 하루라도 빨리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거리 곳곳을 맘껏 거닐고 싶어지는 찬란한 4월이다.
<채영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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