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이름이 다를수록 하는 행실이 다르단다. 누구의 딸일 때에는 딸 노릇을 하고 며느리일 때에는 며느리 행실을 하고 시어머니일 때에는 시어머니 노릇을 한단다.” 친정어머니의 지론이시다. 어릴 때에는 “에이, 설마 그럴려고?” 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으나, 여자의 세가지 큰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고 마지막 시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은 어느 정도 어머니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딸이었을 때는 홀로 되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 받았던 일을 말씀드리면 잠시 후에 또 물어보신다. “너네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셨다고?” 답은 똑같은 것이지만 어머니 기분을 좋게 해드리기 위해 몇번이라도 반복해서 답을 드렸다. 결혼 후 강릉에서 잠시 살았을 때, “여자가 운전을 하네!” 하며 아이들이 차 뒤를 좇아서 따라오던 시절에, 사돈간에 유난히도 사이가 좋으셨던 두 어머니를 모시고 경포대 바닷가를 드라이브했고 초당 순두부와 횟집에서 회를 대접해드리면 무척 좋아하셨다. 45년간 며느리 노릇을 했을 때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눈감고 귀막고 입다물고 살았다.
미국에서의 시어머니 역할은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일년에 대여섯번 만나는 며느리는 친구 같기도 하고 이웃사촌 같기도 하다. 내 아들과 알콩달콩 두 남매 낳아 잘 키우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예쁘다. 어차피 아들은 장가가면 “다른 여자의 남편”이다. 우리 시절의 시어머니들의 기본 레퍼터리였던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라고 하며 아들에게 목을 메고, 며느리와 사생결단하며 싸우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 먼나라의 이야기 같다.
어머니께서는 아내일 때의 여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유추해 보건대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는 일심동체가 되니 싸우지 말고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였을까? 혹은, 철딱서니 없는 남편들 말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네 마음 네가 스스로 다스리며 살아라”는 뜻이였을까? 세상에는 좋은 남편들도 많고 마누라 속 많이 썩이는 남편도 있지만 결국 아내들이 죽는 날까지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고우나 미우나 친구 같은 남편뿐이다. 아무리 자식들이 효자 효녀라 해도 남편 같을까? 가끔 남편이 응급환자 보러 밤에 나가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잠을 자지 못한다. 나는 영원한 남편바라기, 팔불출인가 보다.
<박희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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