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미국에 정착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이 미국 땅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베이지역의 높은 집값과 상대적으로 낮은 삶의 질, 그리고 ‘아프면 죽으리라’ 하는 의료시스템까지. 하지만 내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이 있고 공원이 있고 주말이 있는 삶에 매료되어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왕 이렇게 이 땅에 세금을 내고 살 바에는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문득 “이 큰 땅덩어리에 우리 가족이 살 만한 땅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본능과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고 그 이후로 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근처 숲 속을 중심으로 땅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 땅.
봄에는 꽃도 피고 가끔씩 경작한 뿌리식물들도 캐먹으며 아이들이 맘껏 우리 땅을 누리며 조용히 한적하게 사는 것. 긴 시간 노력 끝에 드디어 멀지 않은 곳 숲 속 외길. 누구도 관심없어 했던 땅을 헐값에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집을 지어 올린 것도 아닌데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땅을 소유한다는 것. 이 큰 미국 땅에 이 땅만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의 세계이기 때문일까?
영화 ‘미나리’의 주인공 제이콥이 아칸소에 있는 버려지다시피 한 드넓은 땅을 사서 이주한 후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장면에 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땅의 의미는 단순히 땅을 소유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는 더이상 이 나라에서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미나리’에서 제이콥의 아내 모니카가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자고 할 때 제이콥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아빠가 뭔가 해내는 걸 아이들도 볼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맞다. 우리는 뭔가 해내려고 이 땅에 왔다. 우리의 이전에도 우리의 이후에도 동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이루어 낼 것이다. 우리의 이전 세대가 그랬고 앞으로의 세대가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랫목을 내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입었고 본인의 삶을 자식에게 고스란히 내어주시던 부모님의 희생을 먹고 자랐다.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미나리처럼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그곳을 살기좋게 만들어가는 한국인들의 고귀한 품성이 이 나라에도 깊이 뿌리내릴 수 있길 기도한다.
<이미경 (안무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