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가 싶더니 무더웠던 어느 날, 어느덧 또 하나의 문을 열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서려는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이는 이야기 도중 “저널을 사서 제가 좋은 방식을 찾아 기록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갑자기 웬 저널인가 생각하다 오랫동안 습관처럼 써왔던 많은 저널들이 떠올랐다. 곧이어 책장에 꽂힌 여러 권의 저널 중 몇 권을 뽑아 아이와 읽기 시작했다. “글씨가 작아서 잘 안보인다. 네가 읽어줄래?” 나의 말에 아이는 그중 하나의 저널을 펼치고 읽어내려갔다.
그곳엔 오래 전 나의 생각들과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던 현재형의 우리가 있었다. 아이가 색종이에 그려준 그림, 얼기설기 써주었던 편지들, 길가에 떨어졌던 나뭇잎, 그날에 마주했던 좋은 글귀들의 필사와 다짐, 그리고 계획들까지. 그때 꿈꾸었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다시금 꺼내본 저널은 우리들의 시간을 더욱 푸르고 따뜻하게 해주었다.
아이가 또 하나의 두툼한 저널을 펼치더니 하나의 엽서를 보고 물었다. 그것은 파울클레(Paul Klee)의 “큰길과 샛길들(Highway and byways)”이란 그림엽서였다. 캔버스의 중앙에는 사다리형으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 길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마치 피아노의 건반 또는 계단처럼 조밀하게 아래 위로 꺾어지며 이어지는 샛길들, 그리고 위쪽에는 지평선 또는 수평선과 같은 길다란 종착지와 같은 길이 놓여 있었다.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왜 내가 그곳에 그 옆서를 붙여 놓았던지를.
“황금 물고기”로도 유명한 파울 클레는 20세기 스위스의 화가로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예술분야를 탐구했던 화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음악의 원리를 미술에 적용하며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함께 보여주는 화가였다. 그의 그림 속에서 선들은 면을 분할한 음계였고 그것은 서로 다른 박자로 연주되는 듯했다. 마치 고속도로와 샛길처럼 그 길을 가는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속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었던 바로 그 그림.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의 길들에서 어떤 길은 때론 가파르고 좁은 곁가지 길일지라도 그 길에 놓인 다양한 색들을 발견하며 가다보면 언젠가 저 멀리 푸른 지평선과 수평선에 닿을 수 있음을. 다시금 현재의 길을 보여주던 클레의 그림은 아이에게, 그리고 다시 나에게 삶에 성찰을 주는 철학이며 노래였다.
<김소형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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