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는 계절, 꽃들이 있는 자리를 맴돌다 발걸음을 멈춰섰다. 그곳엔 파랗게 닻을 올리듯 줄기를 따라 길다랗게 꽃이 피어 오르는 델피늄(Delphinium)이 있었다. 유난히 강렬한 파란잎이 눈길을 사로잡은 그 꽃은 델피늄의 여러 품종 중 ‘Sea Waltz’라 불리는 꽃이었다.
델피늄은 돌고래라는 뜻의 그리스어 ‘delphis’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꽃봉오리 모양이 돌고래 코의 모양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델피늄은 ‘Sea Waltz’ 이외에 ‘Sky Waltz’, ‘Water waltz’ 등 그 색깔과 모양에 따라 다양한 품종들이 있다. 그 이름 끝에 왈츠가 붙여진 것이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를 연상시킨다. 그 푸르름이 바다의 왈츠와 닮았고 하늘의 왈츠와도 닮았다. 몽글거리며 오르는 꽃방울이 왈츠에 맞춰 가지를 오르고 바다 물결처럼 춤을 추듯 보인다.
아이리스, 수국 등과 함께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파란색을 갖는 몇 안되는 꽃 중 하나인 델피늄은 또한 먼 옛날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 정착민들이 파란색 염료를 만드는데 사용되었고 유럽에서는 잉크의 주요 공급원이었다고 하니 그 진하고도 푸른 파란색이 왜 나의 발걸음을 붙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주 먼 옛날 그들도 그 꽃 앞에 멈춰섰을 것이다. 그 푸르름에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델피늄은 전투 중 운명을 달리한 트로이 전쟁 영웅인 그리스 신 아이아스(Aias, 또는 Ajax라고도 불림)의 피에서 유래했다고 했다. 그의 피에서 꽃이 피면서 그 꽃잎에는 그리스어로 “Ai”라는 글자가 새겨졌다고 한다. 신화에서와 같이 누군가의 값진 희생 이후 다시 피어난 델피늄은 새로운 생명과 은총, 기억, 긍정성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메모리얼 데이가 지난 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이아스의 희생처럼, 다시금 맞이하는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고 새롭게 다가옴이다. 푸른 델피늄으로 염료를 만들어 그 색을 담아 무언가에게 변하지 않는 색을 입히는 것, 새 옷을 갈아입듯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며 나아가는 것, 가슴에 푸르른 결로 염색하듯 누군가를 잊지 않고 그들을 기억하는 것,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델피늄을 보니 다가오는 이 여름이 찬란함과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델피늄이 피는 계절, 우리는 이미 그 길에 들어서 있다.
<
김소형 (SF한문협 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