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딸의 필요로 인해 뉴욕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옛말에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일이 있어도 온 가족이 출동하는 게 일상이라 새로 입양된 반려견까지 모두 비행기에 몸을 싣고 뉴욕으로 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아지 뒤치다꺼리하랴, 멋모르고 따라서 온 아들 녀석 비유 맞추랴, 딸아이 아침저녁 내려주고 데려오고 차도 없이 종일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는 줄도 모르고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정말 몇 년 만에 온 뉴욕인가? 마침 뉴욕에서 신혼살림을 꾸린 사촌동생이 생각나 연락을 했다. 밥이나 같이 먹자고. 그런데 한참 후에 전화 와서 하는 얘기가 토요일 저녁에 우리 두 아이와 강아지를 자신의 부부가 돌볼 터이니 우리 부부에게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점심에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순간 어리둥절했다. 내가 평생 살면서 우리 부부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런 배려를 하는 사람은 (우리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정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났다. 이제껏 살면서 남편과 단둘이 아이들 걱정 없이 커피를 마시거나 여유롭게 데이트를 하며 보낸 시간이 있었던가?
나 자신은 또한 세 아이의 엄마로서, 내 일을 하는 사회인으로서 스스로 의무만 부과했을 뿐 나에게 시간이란 선물을 준 적이 있었나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우리 부부의 대화 주제는 늘 아이들 이야기뿐이었고 그외에 우리 자신을 위한 대화를 나눈 기억은 희미하다. 예전에 내 남편이 무슨 노래를 즐겨 불렀더라? 우리가 데이트할 때 주로 뭘 먹었지? 어디를 자주 갔었더라?... 우리는 이렇게 엄연히 살아있는데 풋내나던 나와 나의 애인은 기억 속에 온데간데없고 일에 치여 정신없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중년의 모습을 한 부부만 덩그러니 존재하는 느낌이다.
우리의 시간은 덧없이 너무 빨리 흘러온 듯하다. 막상 우리 부부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뭘 해야 하지? 하는 기막힌 물음이 더 슬프다. 우리에게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고 그 시간을 사준 이 신혼부부의 배려에 감사한다. 여유도 노력이고 습관인 것 같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뉴욕에서 단둘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
<이미경 (안무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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