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유태인 피아니스트였던 브와디와프 슈필만에 대한 실제 이야기로, 2차 대전을 거치며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던 한 피아니스트의 눈을 통해 당시 유럽의 암울한 상황을 잘 담아낸 영화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영화 말미에 주인공 슈필만이 그를 죽이려는 독일군 장교 앞에서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장면이다.
그는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독일군의 눈을 피해 은신처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오랫동안 추위와 어두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결국 한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되고 만다. 은신처의 거실에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먼지만 쌓여 있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져 있었는데, 독일군 장교는 슈필만이 피아니스트였다는 말을 듣고 그 피아노를 한 번 연주해 보라고 명령을 한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가 선택한 곡이 바로 쇼팽의 ‘발라드 1번’이었다. 이 연주를 듣고 독일군 장교가 그를 어떻게 했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기 바란다.
쇼팽은 어릴 때부터 피아니스트로서 주목을 받으며 여러 곡들을 작곡했지만, 대중들에게 아직 작곡가로서의 자신을 알리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발라드 1번’을 발표하며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 곡을 시작으로 그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쇼팽 자신이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된 곡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이 곡은 사단조(Gm)의 곡이지만 ‘솔(G)이 아닌 ‘도(C)’로 시작되고, 곡이 전개되면서 본래 코드인 ‘솔’을 찾아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쇼팽의 마음이 고스란히 이 곡에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인공 슈필만은 왜 하필 이 곡을 연주했을까? 아마도 참혹한 전쟁 속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을 찾고자 하는 그의 고민을 이 곡을 통해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슈필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뮤지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뮤지션들이 다시 예전처럼 활발한 연주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속히 회복되기를 꿈꾼다. #Pianistar HJ
<박현지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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