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 친구가 자기 엄마가 이상하다고 했다. 자기가 목욕하고 나오면 말이 없다가 며느리에게는 ‘너는 왜 매번 물 뚝뚝 흘리냐?’고 한단다. 딸조차 미심쩍던 ‘물 뚝뚝’은 내 뇌리에 남아 예비 시어머니 마음가짐을 다지게 했다.
아들집 방문 중 부엌 바닥 ‘열심히’ 닦는데 아들이 속삭였다. 그만 하라고. 일 다녀온 며느리가 밥 안 먹는다기에 ‘연거푸’ 먹으라고 하다 대변인 아들에게 주의를 들었다. 손자에게 막대사탕 ‘주다’ 눈총과 싫은 소리 들었다, 등등. 실전은 다른 건지 갑자기 소인배가 됐는지, 이래도 저래도 서운해 한편으론 며느리로 사는 입장인 딸에게 족집게과외 받았다.
시어머니는 잘 보이고 싶은 상대라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 집은 엄마 집 아니다. 눈앞에서 과하게 치우면 며느리 청결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걸로 보인다. 밥 권유도 엄마는 사랑과 관심이나 자꾸 하면 사생활 침해나 간섭이고 강요다. 손주들 엄마 애 아니고 사탕 주는 건 나도 싫다, 등등. 고슴도치는 추우면 다가가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아프지 않은 따뜻한 거리를 유지한단다. 경험과 딸의 열강을 통해 전의 상실한 나는 희미한 옛사랑은 내려놓고 새아기 어부바로 노선 바꿨다.
독일의 한 연구결과 부부 이혼 사유의 12.5%가 ‘상대 어머니’로 고부갈등도 큰 사유란다. 오, 노!(Oh, No) 일 잘하고 애들 잘 키우며 나무랄 데 없이 알콩달콩 사는 며느리, 아들이 줄 잘못서고 판단미스하면 나만 드라마 진상주인공 된다. 카톡은 오면 답하고 페이스타임 손주 재롱엔 ‘오쿠오쿠’ 과한 반응에 집은 오랄 때만 간다. 갈 때까지 가는 ‘강남 스타일’은 자기 무덤 파는 일이고, 아들집 다녀와 병나면 자랑이라곤 나이뿐인 자기만 손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공자 가라사대는, ‘소인배를 대할 때 너무 가까이하면 다치기 쉽고 너무 멀리하면 해코지하니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뜻이다. 사냥개가 토끼를 잡고나면 그 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과도 통한다. 시어머니란 며느리 트집이나 잡고 시집살이 시키는 고부갈등 주범인 갑의 이미지다. 태생적 누명에 ‘노릇’까지 하면 ‘가제는 게 편’에게 토사구팽 당할 수 있다. ‘가라사대’치고 그른 말 없다. 가족 평화를 위해 내가 소인배다 인정하고, 데지도 춥지도 않은 거리유지가 시어머니의 올바른 시대정신이다.
<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