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자란 덕에 아직도 책을 놓지 못하는 좋은 습관은 생겼는데 문제는 무분별하게 책을 많이 구입한다는 것이다. 요즘의 책들은 양서와 마케팅서(?)가 뒤섞여 제목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제목과 평을 보고 기대에 차서 구입했다가 책 초입에서 이미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책도 상품이다 보니 표지며, 작가며, 출판사에 마케팅까지 다른 여느 상품들과 다름없이 ‘팔기’ 경쟁에서 자유롭지는 못한가 보다. 그래도 한 달에 양서 몇 권을 사들고 침실로 거실로 화장실로 들고 다니면서 읽다보면 산해진미가 필요없고 열 벗이 필요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늘 나의 편이 되어 주지는 않기에 몇가지 책읽는 요령을 터득했다.
그것은 바로 장소들마다 다른 종류의 책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화장실에는 한 페이지에 내용이 끝나는 단편들로 이루어진 지식 정보 위주의 책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미술사365’나 여행지 정보 같은 책들을 꽂아 놓으면 아이들도 나도 잠시 1-2분의 시간을 투자해 재미있는 지식여행을 할 수 있다.
밥 먹는 식탁에는 한쪽 구석에 타임즈나 포브스지, 내셔널 지오그래피 등 흥미로운 잡지들을 살짝 겹쳐 놓는다. 밥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에 잠시 펼쳐 보면 의외로 잘 읽히고 부담도 없다. 내용이 재미있으면 식사중 대화의 주제가 되고 좀 부담스러운 주제가 나오면 밥을 핑계로 덮을 수 있으니까.
거실 소파에는 당장 해야 하는 일에 관련된 책이나 내용이 좀 무거운 내용의 책을 놓는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좀 긴 시간을 투자해 읽어야 하는 책들을 배치해 둔다. 잠시 책 옆에 놓여 있는 리모콘을 잡을 것인가? 책을 집어들 것인가 하는 순간의 갈등에서 승리하게 되면 그날은 깊고 넓은 지식의 장에서 춤추며 노래할 수 있게 된다.
지치고 힘든 날의 말미에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우면 작은 조명 아래 놓여 있는 책들이 있다. 나의 경우엔 주로 신앙서들이 놓여 있다. 내가 하루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왜 살았는지를 돌아보는 시간.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이룬 것이 아니고 은혜였음을 시인하고 내가 작아지는 아니 내가 죽는 시간이다. 이 의식과도 같은 책읽기는 내가 눈을 뜨고 첫 의식이 돌아오는 이른 아침에도 동일하게 시작된다.
나의 오래된 습관 중 하나는 한 권 이상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 너무 오래되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사실 책을 끼고 다닌다고 해서 늘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뜻하지 않게 주어지는 5분 내지 단 10분의 시간, 정처없이 나의 눈을 놀려대기 싫은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내 팔은 이 수고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책읽기는 참 은밀한 즐거움이다. 나만의 즐거움이자 남을 이해하고 사회를 이해하고 더 큰 우주의 원리를 내 손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평생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을 당신도 함께 누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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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발레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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