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LA에서 아내 친구 가족들이 놀러와 오랜만에 우리 부부도 DC를 관광객이 되어 같이 돌아다녔다. 평소 잘 안 가던 곳도 가보고, 평소 가보고 싶었는데 동기가 부족해서 못 가던 곳도 가보았다. 마침 아내 친구네가 방문했을 때 벚꽃도 피기 시작하고 날씨도 좋아 봄을 만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내 친구네 가족에게는 5살 된 아들이 있는데, 이 친구가 재작년 우리 부부 결혼식에서 결혼반지를 전해주는 화동 역할을 하기도 했던 터라 이들의 방문으로 우리 결혼식 날도 다시 기억나고 여러모로 즐거운 만남이 되었다.
우리 부부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코로나 방역지침이 워낙 엄격해 하객들은 전원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고, 결혼 단체 사진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찍어야 하는 등 조금 아쉬운 점들도 많았는데, 이번 방문에서 우리 결혼식 화동이 되었던 친구와 대화도 많이 할 수 있고, 5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벚꽃 check, MLK 동상 no check, 링컨 할아버지 check.” DC를 방문하면 필수로 찾게 되는 내셔널 몰에 있는 여러 주요 관광지에 대해 5살 아이는 마음에 들면 check, 별로이면 no check라고 명확하게 본인의 호불호를 표현했다. 우리 부부는 자녀가 없고 조카도 아직 말을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는 5살 아이의 거침없는 의사 표현이 너무 귀여웠다.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어 가면서 모든 것에 대해 더 조심스럽게 말하게 되고 몸을 사리게 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는지 이 아이의 언행들이 흥미로우면서도 매우 신선했다.
토요일 저녁은 이 가족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 집에 어린이가 가지고 놀만한 장난감이 없어, 심심하지 않도록 레고를 선물로 준비해 두었다. 이 친구가 레고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이 기회에 나도 같이 레고를 가지고 놀고 싶은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우리가 준비한 저녁이 본인 입맛에 잘 맞지 않았는지 저녁을 금방 먹은 아이는 레고를 같이 만들자고 했다. 그리고 아내와 나를 각각 ‘발레 이모’와 ‘레고 삼촌’으로 앞으로 부르겠다고 선언을 했다. 아내는 발레를 좋아해서, 그리고 나는 이 친구와 레고를 같이 만들고 놀아주어 레고 삼촌이 되었다.
사실 나도 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하기 전 까지는 한국에서 명절 때 용돈이 생기면 모아 두었다가 항상 레고만 샀을 정도로 레고 마니아였다. 심지어 내 용돈으로만 레고를 사기엔 부족해서, 5살 어린 동생을 설득해 동생도 내가 원하는 레고를 사게 해서 같이 놀자는 나름 창의적인? 방식으로 레고를 많이 구입했다.
중학교 7학년 때 미국에서 육상부 활동을 하면서 나의 관심사는 레고에서 운동화로 바뀌게 되었지만, 나도 20년 전에는 아내 친구 아들처럼 레고를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종종 한국을 방문해 원주에 계신 부모님 집에 방문하면 엄마가 집에 있는 레고들은 언젠가 내가 자녀가 생기면 같이 가지고 놀라고 버리지 않고 계시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이번에 레고 삼촌이 되고 나니 엄마의 말이 머지않아 현실이 되겠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롭다.
유년 시절 월마트만 가면 레고 코너로 직행해서, 레고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르던 내가 이제는 레고를 사달라는 자녀의 부모가 되어 어떻게 대응을 하게 될지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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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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