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된장깻잎이 “화들짝” 날 감동시켰다. 지난해 우리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힘든 이사를 했다. 코로나19라는 복병으로 20여년간 천직인 줄만 알았던 세탁소를 닫아야 했다. “세상이 왜 이래?” 믿기 힘든 현실 앞에 누구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나름 최선의 결정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처음 겪는 코로나19 세상에서 살기 위한 투쟁을 같이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바이러스로 인해 죽음이라는 두려움과 사람과 사람간에 전염을 막기 위해 학교며 마켓, 나라와 나라, 이웃은 물론 가족과도 멀리해야 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마치 코로나19와 모든 인간이 게임하듯 “그대로 멈췄다!”
오랜만에 초여름 금빛 햇살이 유난히 곱다. 지난 몇 일 동안 때아닌 폭풍우를 동반한 세찬 비바람에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는데, 이 아침의 만발한 햇살이라니 “아, 희망이다 힘내!”라는 응원의 금빛 퍼레이드인 듯 나를 설레게까지 했다. 침울하고 무기력했던 마음에 내 긍정의 마인드가 슬그머니 되살아나서는 어느새 내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 있었다. “그래, 오히려 더 나은 미래로 가는 전환점이 될 거야” 아, 최고의 긍정 마인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내친김에 7080 추억의 팝송도 볼륨 높여 틀어놓고 향 좋은 꽃차를 예쁜 찻잔에 담아 한껏 여유를 부리며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잘 될 거야~” 찻잔 속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동분서주 우왕좌왕 때로는 세상에 악다구니도 해가며 힘들게 아주 힘들게 세탁소를 정리하고 우리는 새 터전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도 해 보고 싶어 한적한 시골로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지상 낙원이 되어주길 바라며 결정한 그 새 터전은 “파라다이스(Paradise)”.
그럭저럭 제법 맘에 드는 새집도 구하고 주섬주섬 이삿짐을 싼다. 니것 내것 할것없이 어찌나 짐이 많은지 몇 년을 거들떠보지 않았던 구닥다리 옷들이며 ‘혹시나’ 하는 이런저런 궁색한 이유로 버리지 못했던 내 변변찮은 미련한 자태의 묵은 짐들이 망연자실 나오고 또 나왔다. 누가 볼 새라 버리고 또 버렸다.
짐들을 박스에 싸고 박스로 버리기를 몇 날 몇 일, 어느 정도 살림살이가 정리되고 드디어 냉장고와 냉동고 정리를 한다. “우와~” 이삿짐 정리 중 나에게는 최고 난코스가 시작되었다. 특히 냉동고는 4~5년만에 정리하는 것 같았다. 꽝꽝 얼어붙은 생선이며 이름모를 산나물들, 언제적 것인지 연도미상인 장아찌와 곡물들 다시 또 버리기 시작. 절반도 넘게 버리고 버리다가 무엇인가에 화들짝 놀랐다. 울 엄마 살아생전 담가 주신 “된장깻잎”.
2년 전 돌아가신 울 엄마의 마지막 선물인 듯 눈가엔 왈칵 눈물이 나고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어디선가 울 엄마 음성이 들린다. “그래, 우리 복덩이 잘 먹고 힘내라. 2018년 된장깬닢 미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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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지도 8년이 된 김미라씨는 여고시절 꿈꾸었던 시인의 꿈도 이곳에서 이루었다. 만족스러운 글은 아니어도 선배 문인들의 격려로 나름 행복한 문인이다. 4년 만에 다시 쓰는 여성의 창, 기쁘게 나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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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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