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나무가 몇 년 새 시름시름 몸살을 이겨 내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유난히 햇볕에 예민한 아보카도는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도 꽃잎이 떨어질 것 같은 연약하고 가냘픈 연노란 꽃이 핀다. 목이 긴 아낙네처럼 꽃대가 긴 아보카도를 보면 보호본능이 느껴질 정도다. 아보카도는 농약 성분이 제일 적게 들어있는 과일이다. 긴 시간 동안 영양분을 축적하며 인내하고 난 다음 열매를 맺는 과정이 있기에 최고의 영양분을 가진 듯하다. 아보카도 나무를 심은 지 7년이 지난 다음 처음 열매를 맺은 3년 정도는 우리와 다람쥐들한테 넘치는 수확의 기쁨을 주었다. 그런데 그후 3년간은 나뭇가지가 군데군데 듬성듬성 까맣게 타들어가고 어린 열매들이 자꾸만 땅바닥으로 낙하를 했다. 처음엔 나의 돌봄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해 물을 조금 더 주며 사랑을 쏟았지만 좀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 년 새 나무의 숱이 반으로 줄어들었고 가지가 서서히 까맣게 타서 가지치기를 하다가 보니 나무 전체가 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렇듯 기후 변화는 우리 뒤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다른 것은 다 무시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과 생명체들은 매일 음식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 기후 변화로 농사 짓는데 문제가 생기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의 서늘한 기온이 그립다. 이제 밸리 지역에서 아보카도 나무 재배는 더 이상 기후가 허락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는 재배가 가능할 것 같다. 매일 뒤뜰에 나가서 키가 훌쩍 커진 아보카도 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뭇잎 그늘에 숨어 있는 것은 몇 개에 불과하고 거의 까맣게 타버린 타원형의 수많은 아보카도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일부는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다. 불쌍하기까지 하다.
아보카도 나무인들 그 연약한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고통이 왜 없었을까. 사철 푸른 잎을 가진 아보카도 나무는 봄이 되면 참 바빠진다. 여느 과일나무와 다른 길을 걸어간다. 가을이 와도 잎의 색깔이 변함없고 겨울에도 푸르름으로 머물다가 삼사월이 되면 요술을 부리듯 묵은 이파리들이 떨어지자 새 이파리들이 감쪽같이 그 자리를 메우듯 돋아난다. 언제 낙엽이 떨어졌는지 관찰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른다. 묵은 이파리가 떨어지자 마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예쁜 새잎들이 생기 발랄한 에너지를 지니고 새로 돋아나 있다. 가을이 오면 큰 타원형의 아보카도가 주인이 수확해주길 기다리곤 했지만, 나는 겨울과 봄까지 나무에 그냥 두고 필요할 때 따서 먹고 다람쥐도 그것을 따서 몇 입만 먹고 땅바닥에 두고 간다. 다람쥐는 아보카도가 무거워서 입으로 물고 가지 못하니 필요한 만큼 먹고만 간다. 나는 지금 아보카도 나무 한 그루에서 기후 변화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
<권순연(주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