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60) 삼여재 김태균 선생

서예계의 거목 삼여재(三餘齋) 김태균(金台均) 선생이 2022년 6월22일 부인 이민자 여사가 보는 가운데 초서체(草書體)로 상선약수(上善若水)와 지족안분(知足安分)을 쓰고 있다. [Photo ⓒ Hyungwon Kang]

서예가 삼여재(三餘齋) 김태균(金台均) 선생의 낙관. [Photo ⓒ Hyungwon Kang]

김태균 선생이 초서체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쓰고 있다. [Photo ⓒ Hyungwon Kang]

김태균 선생이 초서체로 지족안분(知足安分)을 쓰고 있다. [Photo ⓒ Hyungwon Kang]

김태균 선생이 초서체로 쓴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지류문화재 보존처리 전문가 이상학씨가 표구 작업을 하고 있다. [Photo ⓒ Hyungwon Kang]

대문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시던 김태균 선생과 부인 이민자 여사.
[Photo ⓒ Hyungwon Kang]
인류의 문명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 문화에서 존재하는 역사적인 지식과 남겨진 기록의 ‘질’에 의해 정해진다. 수천년 이어온 우리 서예 전통에서 남겨지는 기록 중 먹으로 한지에 쓴 글씨는 어느 무엇보다도 오랜 기록으로 남는다.
전통 서예의 지속적인 매력은 없어지지 않는 탄소로 만든 먹물로 한지에 인쇄한 글이나, 붓으로 쓴 글씨의 놀라운 수명이다. 우리 먹으로 쓴 글씨와 그림은 색깔이 검고 오래될수록 검은 빛깔이 퇴색하지 않아 더욱 깊은 맛이 난다.
우리 전통 먹은 소나무 뿌리를 태워서 만든 탄소와 아교로 만드는데, 먹으로 쓴 글씨와 고서화는 부식되거나 부패하지 않으며, 먹은 불에도 타지 않는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때 서해를 건너 활발한 무역이 오갈 때 질 좋은 우리 먹은 주변 왕국에서 언제나 많이 찾던 품목이었다. 선비의 방에는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4가지 필수품이 있는데, 종이와 붓, 먹과 벼루를 말한다.
견 오백 지 천년(絹 五百 紙 千年)이란 말이 있다. 비단은 오백 년을 가고, 한지는 천년을 간다는 뜻이다. 신라 때 우리 조상들이 만들던 명품 닥종이가 있었는데, 계림지(鷄林紙)라고 불렸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다가 발견된 불교 경전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4-751) 역시 한지에 먹으로 목판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한지 인쇄물이다.
종이가 없던 서양에서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라는 서예가 14세기가 되어서야 유럽에서 종이에 글씨를 쓰는 전통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예 역사가 늦게 자리 잡았다. 유럽에서 성경책을 베껴 쓰는 직업으로서의 캘리그라피 서예가들의 활동이 있다가 1450년에 금속 활자가 도입되면서 15세기부터 그 직업 자체가 큰 타격을 받았다.
고려는 13세기 초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로 책을 관공서나 사찰에서 인쇄한 반면, 일반인들이 희고 매끄럽고 질긴 종이였던 고려지(高麗紙)에 붓으로 의미 있는 한자를 쓰는 서예는 문자적인 소통을 초월한 미적이고 예술적인 표현의 한 장르로 발전해왔다.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지(韓紙)로 불리는 닥종이에 붓으로 쓰는 서예를 소통과 표현의 도구로 삼아온 우리 역사에서, 시대별로 수많은 명필과 평생 배워도 터득 못할 독특한 서체들의 많은 전통이 내려온다. 좋은 문장을 바른 자세로 쓰는 전통적인 서예에서 붓으로 쓰는 점은 하늘을 상징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지르는 선은 땅을 의미하며, 세로로 내려쓰는 선은 사람을 뜻한다.
글씨의 꽃으로 불리는 초서(草書)체의 대가 삼여재(三餘齋) 김태균(金台均) 선생이 지난 7월 19일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필자가 지난 6월 찾아뵙고 서예에 대해서 여쭤봤을 때, 조심스러운 말씀으로 “초서는, 변화가 무쌍하고 쓰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낸다”고 하시던 김태균 선생은 어려서부터 서예를 배우셨는데, 본격적으로 30세부터 한국 서예계의 거두 시암(時庵) 배길기(裵吉基, 1917-1999) 선생으로부터 사사(師事)했다.
그동안 대학에서 서예를 가르치시며,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 운영위원,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태균 선생은 먹물 한 방울도 흐트러짐 없는 붓글씨 실력을 가지고 한지 위를 미끄러지듯 붓을 움직이시는 막힘 없는 흐름의 압도적인 경지에 오르신 서예가이셨다. 오늘날 전통 서예는 문자 그대로의 메시지를 떠나서 시각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예술이다.
김태균 선생은 병산서원 원장으로 지난 가을제사에 참여할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올 7월에 갑자기 건강을 잃으셨다.
오랜만에 만나 뵈었을 때 손을 꼭잡고 “여기가 어데라고 찾아왔는가?”라며 4시간을 안 쉬고 달려온 필자를 반겨주시고, 한나절 같이 시간 보내주시고 배웅하실 때는 대문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시던 어르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서예를 통해서 주변에 살아계시는 조상들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배웠다.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우리·문화·역사 Visual History & Culture of Korea 전체 프로젝트 모음은 다음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www.kang.org/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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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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