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소사이어티, 탈북여성 좌담회…北여성인권 주제 전시회도
북한 여성의 삶과 목소리에 초점을 맞춘 미술 전시회가 내주 뉴욕에서 개막하는 가운데 탈북 여성 3명이 18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해 북한 내 여성들의 인권 현실을 생생히 증언했다.
지난 2008년 북한에서 탈출한 김성희 씨는 이날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아버지 고향이 경상남도였는데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을 받는 게 어렵고 힘겨웠다"며 출신 성분에 따른 북한 사회의 신분 차별 실상을 고발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이라고 밝힌 김씨는 "북한에서 출신성분을 나눌 때 최하위가 전쟁포로, 그다음이 남조선 출신 사람들"이라며 "태어날 때부터 차별받으며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빠가 공부를 잘하는 수재였는데 정작 대입 시험에서 1등을 했는데도 출신성분 때문에 김일성종합대학 대신 농민이 되는 농업대학을 추천받았다"며 "출신 성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형제들이 기를 쓰고 공부했는데, 큰오빠의 농업대학 추천 소식에 온 집안이 밤새 울었다"고 당시 느꼈던 절망감을 전했다.
김씨는 탈북 후 현재 한국에서 모친에게서 배운 북한식 술을 빚는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나름 출신 성분이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는 평양 출신 나민희씨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참혹했던 기억을 공유했다.
나씨는 "교사였던 어머니와 공무원인 아버지 모두 국가 배급에 의존해야 했는데, 대기근으로 모든 공급이 중단됐다"며 "저와 오빠를 굶기지 않으려고 어머니가 굶으셨던 적이 많은데 그게 가장 힘든 기억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가정 내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있다는 질문에 김씨는 "고난의 행군을 견뎌내면서 여성들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성들이 생계를 책임지게 돼도 해야 할 과제만 늘었지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에서는 남편이 있어도 딸을 잘 키울 자신이 없었는데 혼자서는 더욱 막막했다"며 사고로 인한 남편과의 사별이 탈북 결심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나씨는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외화벌이 노동자로 일하던 중 탈북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현지인이 휴가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을 보고 자유가 억압받는 북한의 현실을 자각했다고 말했다. 나씨는 "우리는 항시 감시만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좌담회의 탈북 여성 증언은 북한 여성 인권을 주제로 한 뉴욕 미술 전시를 앞두고 열렸다.
오는 20∼27일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베카 전시 공간에서는 북한 여성의 인권을 주제로 한 전시회 'UNSEEN(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열린다.
크리스틴 해리스 아모스, 릴리아나 포터, 리비아 투르코 등 전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14명의 작가가 참여해 북한 여성들의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그들의 숨겨진 얘기를 예술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