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달이라고 한다. 내가 처음 와인을 맛본 곳은 오레곤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와인에 맛들이기 시작한 건 캘리포니아로 이사 온 다음이다. 와인 컨츄리에 사는 주민으로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나파밸리를 방문했고 우연한 계기로 주류 지역사회 직장여성들이 만든 WOW(Women of Wine)이라는 와인 클럽에 가입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레스토랑에서 먹는 저녁의 반주로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
와인에 대한 내 지식은 아주 기본적인데다가 가끔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에서 사마시는 정도였지만 타고난 인복과 식복 덕택에 “귀인”들을 만나 “와인 황홀경”을 여러 번 체험했다. 그 첫번째는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따신 후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치셨던 긴 금발의 WOW 와인 클럽 회원이 프랑스 식당에서 나눠주신 와인의 향기였다. 7, 8년 후에 거리를 걷다가도 한 남성이 젊은 여성과 한 싱그럽고 달콤한 첫 입맞춤을 못 잊어 떠올리듯, 머리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는 매혹의 향기였다. 이 분과 나는 팬데믹 직전, 2020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에도 프랑스 식당에서 이 분이 고른 유명한 프랑스 적포도주를 같이 마셨다. 양고기랑 같이 마시니까 신기하게도 졸업식 후 녹초가 된 내 몸이 보약이라도 먹은 듯 피곤이 녹고 원기를 회복함을 느꼈다. 팬데믹 전 마지막 외식이었다. 대수술을 한 2018년에는 선물처럼 2017년 반 클라이번(Van Cliburn)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씨가 카멜에 와서 데뷔 연주를 했는데, 무대에 뛰어올라가 꽃순이 역할을 한 후 로비 리셉션에서 쿠키랑 조금 마신 적포도주는 취기가 전혀 없는 완벽하게 즐거운 행복감을 선사해주었다.
그런데 와인이 내 삶에서 유의미한 존재감을 갖게 된 건 불과 1년 전이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뉴스에 충격먹고 기분전환하러 동네 레스토랑에 나온 날, 와인을 몇 천병 수집하신 전염병 전문의가 웨이트레스를 통해 나눠주신 고급 프랑스 백포도주는 내가 시킨 홍어요리와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놀라움에 테이블로 바로 찾아가 감사를 드린 이후 고급 와인병들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만남들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덕택에 나는 “와인에 대한 입맛을 확실히 버렸을” 뿐만 아니라(Trader Joe’s 와인, 잘 가!)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미각을 통한 미적 체험이라는 경지로까지 와인에 대한 내 인식을 업그레이드했다. 와인의 아름다움은 진정 우리를 사랑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치유하고 축하해주고 나누게 하고 위로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정혜선(몬트레이 국방외국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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