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샌프란시스코 드 영(De Young) 박물관에서 본 람세스 2세 전시회는 강력했다. 5,000여년에 걸친 이집트 역사가 시각적으로 집약된 유물들을 보면서 인류문명사의 어마어마한 궤적이 시공을 초월하여 체감되었고 이런 전시회를 가능하게 하는 고고학이나 미술사 같은 분야에 대한 외경심이 허리케인처럼 몰아쳤다. 내 대학교 전공도 고고학과 미술사다. 합쳐서 고고미술사학과라고 하는데, 현재 전국에 6개밖에 없는 “희소학과”다. 내가 다닌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는 사학계열이어서 과사무실이 인문대 건물 안에 있었는데, 당시 나보다 두 학번 아래로 동양사학과 학생이었던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같은 층을 쓰는 “이웃”이었다. 1, 2학년때는 고고학과 미술사를 모두 공부하다가 3학년부터는 미술사를 선택했지만 방대한 암기량과 좁디좁은 취업문 때문에 오랫동안 전공은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런데 2011년 5월 뜻밖에 내 전공을 아는 동료가 문화수업을 부탁했고 급당황한 나는 내 칼럼의 단골손님, 과 후배이자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김현정씨에게 자문을 구해, 군인학생들을 위한 지정학적인 내용의 미술사 강의를 하기로 했다. “미술을 통한 한국의 역사”로 강의제목을 정한 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구려 고분벽화들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 시대상과 문화를 소개하였다. 강의 초입에 고대 삼국 중 최강국이었던 고구려의 영토가 부채꼴 모양으로 중국까지 크게 펼쳐진 지도와 그 증거로 중국에 세워진 거대한 광개토왕대왕비를 보여주고 지금은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한국이 한때는 동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무엇보다 고구려 고분들 안에 그려진 벽화들은 어찌나 생생하고 내용이 풍부한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했다. 1,300여년 전 고구려인들의 일상생활, 예술, 종교, 군사활동이 고스란히 보여지는 동영상 같았고 예술성도 탁월해서 북한에서 발굴된 강서대묘의 현무도는 튀어나올 듯한 생동감을 세련되게 표출하였다. 2시간짜리 문화수업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관한 한, 중, 일 역사 학자들을 인터뷰한 유네스코 동영상으로 뜻깊게 막을 내렸다. 학생들은 3개국 전문가들이 고구려 고분 같은 한국 역사의 흔적을 말살하려는 중국의 정책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를 보이자 환호했고 한 명은 기립박수를 하기도 했다. 나조차 내 수업에 감동이 되었고 역사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밝혀내는 고고미술사의 중요성이 온 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강력하게 느껴졌다. 고고미술사는 내게 “사랑하기에 너무 늦지 않은 당신”이 되었다.
<정혜선(몬트레이 국방외국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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