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신학공부를 위해 수년 동안 LA에 있는 신학교를 다닐 때 우리 부부는 거의 매일 전화통화로 교회와 집안 소식을 알렸다. “따르릉” “별 일 없어? 유정이는? 교인들 별일 없고?” “네, 다 잘 있어요” 그 대화 외에 우리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알았어” … 잠깐의 침묵 후 남편의 전화는 “라뷰!”로 끝을 맺는다.
내 남편은 사랑 표현이 참으로 메마른 편이다. 그렇게 예뻐하는 딸아이 유정이에게조차 씻기고, 늘 안아주고, 신나게 목마를 태워 주면서도 살갑게 뽀뽀는 해주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결혼 전의 불타는 사랑은 나와의 결혼을 위해 목숨을 건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녀자를 찾아 한국을 방문했던 남편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남은 석 달의 짧은 기간에 우리는 남들 만큼의 연애 감정을 다 채워야 했다. 매일의 만남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기 바빴고, 밤 사이 깨알같이 적어와 품에서 꺼내는 나를 주제로 한 소설, 찻잔을 들었을 때 보이는 냅킨 위에 쪽쪽 뻗은 글씨체의 소복한 시구절들은 내가 보따리 짐을 챙겨 남편과 줄행랑을 치기에 이미 충분했다. 먼저 미국에 돌아간 남편이 한 달에 한 번씩 보내오는 녹음 테이프에는 나를 향한 셀 수 없는 그리움, 사랑 고백이 빼곡했다. 이 모든 사랑 추억은 잦은 이사와 결혼 40주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내 서랍장 속에 고스란히 간직해오는 귀한 내 보물들이다.
나는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 말은 교회, 일터, 집안 어디서든 나를 슈퍼우먼으로 만들어 내는 최고의 처방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떨어질라 치면 난 남편에게 쪼르르 달려가 어떻게 하든 그 말을 받아내고야 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입술이 조금씩 무거워져 갔다. 왜 그 말을 그리 하기 힘들어 하는지. “입으로 하는 놈들은 다 거짓말이야”라고 한마디 덧붙이기도 한다. 나 역시도 바쁜 일상 속에 징징대며 사랑 고백을 받아내고픈 마음이 어느덧 무뎌가고 있을 즈음, 남편은 집을 떠나는 일이 있을 때에 끝자락에 신기한 말을 꺼낸다. “라뷰!” 의아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I LOVE YOU”라고 귀띔해준다.
그 이후, 민망한듯 후다닥 발음하는 남편의 “라뷰!”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연습되어온 단어이지만 아직도 집안에서는 듣지 못하는 남편의 멋쩍은 사랑 고백이다.
이제는 내가 회사 일로 집을 비울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남편은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애써 뜨거운 사랑 표현을 해주며 살포시 “라뷰!”를 건네 준다. 그러면 나는 다시 슈퍼우먼이 되어 캐리어 가방을 끌고 발걸음도 가볍게 비행기로 향한다.
굵직한 저음 톤의 적당히 멋쩍은 남편만의 단어 “라뷰!”는 나를 진정한 행복의 웃음을 짓게 하는 사랑 처방이며, 아직까지 이어오는 우리만의 사랑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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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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