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유행했던 노래가사가 있다.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나”라는 가사인데 7080세대인 나로서는 이 가사를 따라하는데도, 이해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평생 피아노 소리에만 집중하다 보니 가사에 약한 나인데 그러나 희한하게 이 가사만큼은 한번씩 내 입술에 맴돌곤 한다. 어느 날 이 가사를 읊조리다 보니 선뜻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응? 이거 바로 내 마음이지 않아? 딱 지금의 나쟎아!
그 가사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 마음내시경의 정확한 진단이었다. 이 얘기를 하려니 어느 은퇴사모님이 떠오른다. 우리의 만남에 보따리 하나를 들고 오셨는데 그 안에는 빨간 원피스 한 벌이 들어 있었다. 30년 전에 그 원피스가 너무 예뻐서 사셨는데 큰 맘 먹고 주일에 차려입고 나오니 목사님께서 눈을 휘둥그레 뜨시고는 그 옷을 입고 어디 교회를 가느냐고 난리를 치셔서 그후로 이제껏 한 번도 못 입어 보셨다가 오늘 그 소원을 풀기 위해 가져 오셨단다. 빨간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수줍게 사뿐사뿐 걸어 오시는 은발의 사모님은 너무나 고우셨다.
사모 역할을 하다 보면 교인들에게 내 모습을 그대로 내어놓지 못할 때가 있다. 사실 많이 부끄러운 얘기일 수 있지만, 내 이어져온 삶은 성도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나의 솔직한 생각, 감정, 부족한 면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훈련되어 온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성격 테스트를 해보아도 나는 지도자형, 칭찬형이란다. 그 칭찬과 책임감에 못 이겨 나는 쇼윈도우에 내놓을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나를 보여주려 온몸을 씩씩대며 그리도 열심히 움직여왔고, 그러다 보니 결국 건강도 상하고 나 자신을 못 지키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진 이제서야 정신을 차려 엄마는 “NO”라는 대답부터 배워야 한다는 딸래미가 준 숙제도 연습하고, 온종일 진짜 내꺼랑 놀아주기도 하며, 지워지지 않는 상처는 꺼내어 달래고 토닥토닥 해주어 애써 용서의 박스에 담기도 한다.
사도 바울이 마음에 두사람이 있다고 고백했듯이 내 마음내시경은 남들이 재어주는 기대치에 선뜻 내어주었던 나와 그래서 곤고하고 외로웠던 또 다른 내가 함께 사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나의 모습은 누구 탓도 아닌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해 만들어 낸 그리 아름답지 않은 내마음의 병명이 틀림없다.
이렇게 하련다. 내마음의 주인은 바로 ‘나’이기에 둘이 아닌 온전한 내꺼만이 거하도록 마음의 대청소를 하자. 꼭 금그릇이 아니면 어떠한가. 은그릇, 목그릇, 질그릇도 나를 담기에는 이미 넘치게 충분한 것을.. 그저 내 모습 그대로 마음에 담아 다가올 그날에는 허락하신 내꺼만을 주님 앞에 가져갈 것이다. 다행히 조금은 길어진 인생과 믿음 연륜이 내 바람의 끝자락까지 나와 동행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내가 나를 한껏 세워주고 사랑을 퍼부어 애매모호했던 나로부터 용솟음하여 ‘나는 나’일 수밖에 없는 최고로 멋진 나를 창출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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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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