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치관 변화·바쁜 사회생활 등 이유 결혼 기피
▶ ‘한인’ 고집 말고 타인종에게도 열린 마음 필요
# “혹시나 했는데 또 해를 넘기게 됐어요. 내년에는 꼭 좋은 사람 만나 딸이 가정을 이루고 살았으면 해요.”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거주하는 한인 A씨는 남부러울 것 없이 만족한 삶을 살지만 몇 년새 고민이 생겼다. UVA와 명문 로스쿨을 나와 DC 로펌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활동하는 딸이 내년이면 40이 되는 ‘골드 미스’인데 도통 결혼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친구들의 딸, 아들은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는데, 본인 딸만 아직 이다. 이제는 친구들 만나기도 부담스럽다. 시집 장가 간 딸, 아들 얘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도 A씨가 곁에 가면 이야기를 중단하는 게 보여 친구들과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 메릴랜드 락빌에 사는 B모씨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40을 넘긴 아들이 좋은 대학 나와 미국직장에서 잘 나가지만 아직 ‘장가 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해 은근 걱정이다. 워싱턴 지역에 사는 대학 동창에게 부탁해 ‘맞선’도 몇 번 주선했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부모 세대와 생각과 문화가 많이 다른 2세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자리 잡아 가는 추세 속에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나이가 꽉 찬’ 한인 2, 3세 자녀를 둔 부모들의 한숨이 길어지고 있다.
앞의 A씨는 “아무리 결혼이 선택이라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짝 찾아 가정을 이루는 게 순리잖아요. 젊어서야 ‘싱글’이 좋지만 젊은 시절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부모가 세상 떠나면 서로 의지하고 헤쳐 나갈 배우자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딸에게 시집가라 잔소리 하게 돼요”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인 2, 3세들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알링턴에서 태어난 30대 중반의 한인 2세 C씨는 “부모님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결혼하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아직은 혼자가 편하고 필요성을 못 느낀다”라며 “부모가 자꾸 잔소리 하니 집을 찾아가기가 싫어진다”고 말했다.
맥클린에 거주하는 40대 초반의 잘 나가는 의사 D씨는 “20대 후반 의대 재학시절에 미국인 여학생과 교제를 한 적이 있는데 부모님이 한인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 해서 헤어진 적이 있다. 그 이후론 너무 바빠 누구를 만날 시간도 없었고, 지금은 누구에게 매이는 게 귀찮아 결혼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인 배우자를 원하는 한국식 사고의 부모와 영어권에서 자란 자녀와 언어, 문화차이로 인한 거리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만큼이나 크다. 또 시대가 변하며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필수가 아닌 옵션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다.
가정문제 상담 전문 카운슬러인 모니카 리(비엔나, VA) 박사는 “주변에서 나이가 꽉 찬 자녀의 결혼을 걱정하는 분들의 하소연과 갈등에 대한 상담을 가끔씩 받는다. 이제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달라져 젊은이들에게 결혼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의 걱정이 잦아지면 부담스러워 부모와 거리를 두고 심하면 단절하게 된다”며 “자녀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귀담아 말을 들어줄 것”을 조언했다. 또 100세 장수시대에 재혼, 삼혼도 많아지고 40, 50에 결혼하는 일도 흔해졌으니 기존의 고정관념을 깰 것을 충고했다. 성인자녀에 대한 간섭과 걱정이 지나치면 ‘심리적 폭력’이 된다고도 했다.
한편 이 같은 결혼 기피 현상은 한국에도 공통되게 나타나 한국의 미혼 남녀 가운데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 통계청의 ‘2022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한국의 미혼 남녀 가운데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비중이 미혼 남성은 36.9%, 미혼 여성은 22.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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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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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나 레즈비언 일수도… 한국 부모도 눈 뜨고 귀 기울시간이 왔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