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오지에 터를 잡고 사는 원시부족인 타라우마라(Tarahumara)족은 달리는 사람들로 잘 알려져 있다. AP통신 종군기자로 전 세계 오지를 누볐던 저자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저서 ‘본투런’(Born to Run)에서 타라우마라족의 삶을 그려내며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주장을 펼친다.
북아메리카 오지 코퍼 캐년에 살고 있는 타라우마라족은 운송, 사냥 등을 위해 험준한 고원을 뛰어다니며 달리기 기술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라라무리’(달리는 사람들)라고 칭하며 아이를 키울 때도 걷기 보다 달리기부터 가르친다. 타라우마라족에게 달리기는 고통이 아닌 즐거움 그 자체이며, 삶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서 꾸준하고 치열하게 글을 쓰기 위해 매일 달리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묘비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써넣고 싶다고 고백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그에게 하루 최소 한 시간 이상 달리며 자신만의 침묵 시간을 확보하는 건 정신건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달리기로 단련된 건강한 육체가 존재할 때 한정된 양의 재능과 시간을 필요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부을 수 있게 된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산악인으로 알려진 김명준씨도 달리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 4월17일 열린 127회 보스톤 마라톤에 출전해 4시간12분55초 기록으로 80세 이상 남자부 1위를 차지(본보 4월20일자 보도)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김씨는 풀코스를 완주한 100번째 마라톤 성공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과거 세계 최고령 7대륙 완등, 8대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등 끊임없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왔는데, 80세인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1999년에 처음으로 참가한 LA 마라톤을 시작으로 2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라토너로 살아왔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후배들이 손수 만들어준 ‘100th Full Marathon’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달려 현장에서 뜨거운 응원과 박수세례를 받았다. 김씨는 “뛸 때는 잡념이 사라지고, 오직 뛰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달리기에 대해 예찬했다.
달리기는 뛰는 행위를 제외하고서도 삶의 모든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잘 달리기 위해서는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하고, 다음 번 달리기를 위해 식습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김씨의 경우 주 2회 근력 운동, 주 40마일 이상 달리기를 통해 80세에도 젊은이들에 뒤쳐지지 않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노년에도 달릴 수 있는 힘은 치밀한 자기관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달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달리는 과정은 고통을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끝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을 얻는 일이라고. 그들은 달리면서 일종의 수련 과정을 거치고, 내면의 밑바닥에 깔린 본연의 나를 생생히 마주한다. 심장이 터질 듯 뛰면서 발생하는 물리적인 고통을 극복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몸 안에 돌고, 삶은 단순명료해지며, 부정적인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김씨는 50대 때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을 꿈꾸기 시작해 64세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이후 남극과 북극을 포함한 세계 8대륙에서 열리는 마라톤을 완주해 마라톤 그랜드 슬램도 달성했다. 나이의 한계, 체력의 한계는 물론 인간의 한계 마저 넘나드는 도전으로 많은 한인들에게 감명을 주는 아마추어 산악인이자 마라토너인 김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 또한 달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체코의 마라톤 영웅 에밀 자토펙은 말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고. 창밖을 바라보니, 오늘 날씨가 맑다. 정처없이 자유롭게 질주하고 싶은 날이다. 인간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면, 달리지 않고는 이 삶을 배길 수 없다. 달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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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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