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자동차를 갖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일이다. 대한항공 LA지사로 발령받고 미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자동차를 사고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아파트를 구하고 은행 어카운트를 열고 소셜 시큐리티 카드를 신청하는 것도 급했지만 그보다도 차가 급선무였다.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광활한 도시 LA에서 차가 없으면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출퇴근은 물론 장보러 갈 때도 남의 신세를 져야하니 하루가 급했다.
동료직원의 도움으로 중고차 매장에서 내 생애 최초로 자동차를 사던 날을 잊지 못한다. 자동차 매매계약서 작성을 마친 여직원은 주차장 한구석에 세워져있는 무지하게 큰 차 앞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자 이제부터 당신 차입니다.” 하면서 열쇠를 건네주었다. 차 앞에는 ‘포드’ 상표가 붙어있고 옆면에는 ‘그란 토리노(Gran Torino)’라는 차 이름이 양각되어있었다.
중동 오일쇼크가 나기 전이라 휘발유 값이 그야말로 물 값보다도 쌀 때였으므로 미국인들은 너나없이 모두 8기통짜리 대형차를 몰고 다녔다. 기름을 땅에다 붓고 다니듯 휘발유를 많이 먹는 차였지만 승차감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조용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제 부품을 들여다가 조립한 새나라 자동차라는 소형차가 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돈 있는 특권층 이외에는 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때였다. 차가 있다고 해도 대개 운전수를 고용해서 타고 다녔고 자가운전자는 드물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 갑자기 크고 안락한 8기통 세단을 소유하고 직접 운전하고 다니게 되니 도무지 꿈만 같았다. 너무 좋고 신기해서 차를 이리 저리 만져보고 틈만 나면 차 안팎을 깨끗이 닦고 광을 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와 자동차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어언 반세기 가까운 장구한 세월동안 이어져 왔다. 그동안 하루라도 차 시동을 걸어보지 않은 날은 거의 없었으리라. 차는 말하자면 내 몸에서 돋아나온 바퀴처럼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가 되어 나를 싣고 다녔다.
이제 나이 들어 주위를 보니 치매나 건강악화, 시력저하 등 문제로 더 이상 운전을 못하게 된 사람들을 여럿 보게 된다. 머지않은 장래에 내게도 그런 날이 닥쳐올 것이다. 그때 느끼게 될 크나큰 상실감과 서글픔은 어찌할 것인가. 내 몸의 일부처럼 광야와 고속도로와 타운을 질주하던 그 듬직한 바퀴가 어느 날 갑자기 내게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면... 대신 작은 네 바퀴와 의자가 달린 보행기를 짚고 걷게 되겠지.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여 천천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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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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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차를 움직이려면 차 시동을 걸어야 하고 뒤로 후진하려면 상체를 서커스하는것처럼 직접 돌려 뒤를 돌아보는거 또는 차선을 바꿀때 사이드 미러를 보는것 또 정기적으로 시간 내서 오일 체인지 하러 가는것등등 다 우습게 보인다. 이제부터는 시동거는것 따위 필요없고 그냥 차에 앉으면 가는거고 뒤, 사이드 시야도 차가 다 알아서 봐줄거고 오일 체인지 같은 귀찮은거짓도 할필요 없어진다. 이렇게 세상은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