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작가로 에이모 토울스를 좋아한다. ‘모스크바의 신사’로 알게 되어 역주행해서 그의 데뷔 소설 ‘우아한 연인’을 마쳤고 그의 세번째 소설 ‘링컨 하이웨이’로 이 여름의 더위를 피하고 있다.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는 중에 오늘 새 단어 하나를 배웠다. 행도그(hangdog).
한국에서 먹던 핫도그가 그리워 핫도그 핫도그 찾다가 그 핫도그는 핫도그(hot dog)가 아니고 콘도그(corn dog)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인 단어다.
잘못한 얼굴, 죄지은 표정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 졸귀, 큐트한 퍼피 페이스와는 완전 다르게 처량한 느낌을 주는 얼굴 표현을 말한다. 평소 집안에서 오줌 잘 참는 우리집 강아지가 어쩌다 실수를 했을 때 너 왜 그랬어 다그치면 벽 가장자리를 벌벌 기어 식탁 밑으로 도망가 숨으며 짓는 딱 그 표정이다.
어원을 찾아보니 중세 시절 사람을 물거나 음식을 훔쳐간 개를 매달았던 풍습에서 왔다고 한다. 으잉?
잊고 있던 복달임의 악몽이 떠올랐다. 시원한 물가에 가마솥을 걸고 가까운 나무에… 도시에서 자란 탓에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내 나이 또래에게는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되던 개잡는 풍경. 복날 개패듯이,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보신탕을 놓고 말이 나오는데 그 논란의 도가니도 이제 슬슬 김이 빠져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져가겠지. 아쉬움? 그런 거 전혀 없다.
더위와 개가 얽혀서는 ‘개같은 날의 오후’라는 표현이 떠오르는데 문득 의심이 생겼다. 이 말이 복날처럼 우리가 오래 전부터 써온 표현인가. 그건 아닌 성 싶다.
별로 근거 없는 내 추론으론, 95년엔가 나온 동명의 영화제목이 이 표현을 입에 익게 했고 정선경이 출연한 그 영화는 또 그보다 20년 전에 나온 알 파치노의 ‘Dog Day Afternoon’을 스리슬쩍 따온 것 아닐까? 뭐 아님 말고.
여하튼 뜨거운 복날 오후 거적때기보다도 작은 그늘에 숨어 혓바닥 내놓고 헐떡거리는 시골집 누렁이…. 개같은 날의 오후라는 묘사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런데,
영어에서 몹시 더운 날이라는 표현인 ‘Dog days of summer’는 이 땅의 누렁이 얘기가 아니라네. 밤하늘 별자리 가운데 큰개자리의 대장별 시리우스랑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시절엔 지금 이 즈음에 ‘개별’ 시리우스가 태양이랑 같이 떴다나 어쨌다나.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는 나로선 별 감흥이 돋지를 않는 해설이다. 사실 점성술 별자리 운세 그런 걸 내가 싫어하거든. 왜냐고?
그냥 제 별자리가 시시해서 그라요. 사자도 아니고 황소도 아니고 물고기 자리가 뭡니까 물고기가. 물개도 아니고. 아, 근데 왜 제가 반말했다가 내가 존댓말 했다가 왜 이러죠? 더위 먹었나 봅니다. 그냥 봐주소 마.
<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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