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방향)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1909년에 제작한 ‘구스타프 말러의 두상’(국립미술관).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1880-1901년’ 이탈리아 조각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주교, 1623년’ . 프랑스의 화가 겸 조각가 에드가 드가의 ‘14세의 어린 무용수, 1901-1921년’. 마르크 샤갈의 모자이크 작품 ‘오르페우스, 1969년’(전체).
국 립미술관 서관에 입장하면 바로 옆에 후원자 게시판이 있다. 후원자는 국립미술관에 5백만 달러 이상의 누적 기부금 또는 그 액수 이상의 예술 작품을 기부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분들이 있어 미술관은 더욱 풍성해지고 관람객들은 행복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립미술관은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통 회화의 서관, 현대 미술의 동관 그리고 유명 작가들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야외 조각정원이다. 서관 옆에 위치해 있는 조각정원의 21개 조형물 또한 마찬가지다. 호안 미로, 마르크 샤갈 등 유명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 모두 후원자들의 기부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6에이커의 넓은 정원에는 식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파빌리온 카페도 있다. 그리고 여름에는 매주 금요일 저녁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다.
정원에서 눈에 띄는 작품으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하우스’가 있다. 그는 광고와 만화를 기반으로 한 팝 아트로 유명하다. 하지만 리히텐슈타인는 야외용 대형 조형물까지 제작했다. 이 작품은 하얀색, 노란색, 진홍색의 집에 검은색으로 굵은 선을 긋고 기울여 세웠다. 3차원의 환상적 효과를 활용한 것이다. 앞에서 보는 하우스와 옆에서 보는 하우스의 느낌이 다른 이유다.
미국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아모르’도 특별하다. 빨간색으로 제작한 AMOR(사랑)는 글자 중 ‘O’자를 기울여 세웠다. 인디애나의 이런 독특한 디자인은 방문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폴란드 출신의 여류 예술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츠의 ‘푸엘라에(소녀)’도 특별하다. 차렷 자세로 서있는 수 십개의 청동상에는 머리가 없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서 독일로 가는 기차에서 얼어 죽은 수많은 소녀들을 목격했다. 그 아픔을 청동 조형물로 표현한 것이다.
마르크 샤갈은 훌륭한 화가지만 동판화, 석판화, 스테인드글라스는 물론 워싱턴에서는 모자이크 벽화까지 제작했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유시인으로 리라(현악기)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연주는 초목과 동물은 물론 인간과 천사마저 춤추게 한다. 오르페우스는 샤갈이 미국에서 제작한 첫 번째 모자이크 벽화였다.
조각정원을 나와 서관에 입장하면 조각 전시관이 나온다. 전시관에는 바로크 조각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 화가이자 조각가인 에드가 드가, 근대 조각의 아버지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등 수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베르니니의 작품은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주교의 흉상’이라는 조각이다. 베르니니는 1623년 교황 우르비노 8세로 부터 삼촌(주교)의 흉상을 제작해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하지만 주교는 수 십년 전 죽은 인물이다. 베르니니는 대리석의 질감, 빛의 반사를 통해 생전 본 적도 없는 주교 이미지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우르비노 교황은 베르니니를 끔찍히 아끼고 후원했던 인물이다. 조각전시관은 에드가 드가의 회화 21점, 스케치 83점 그리고 조각은 65점이나 소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에드가 드가 전시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 중 ‘14세의 어린 무용수’는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다. 발레슈즈를 신고 완전히 턴 아웃 된 오른발, 지긋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소녀의 표정은 압권이다.
로댕의 작품은 국립미술관에서 조각 46점, 스케치는 24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로댕의 다른 작품인 ‘지옥의 문’의 일부였다. 후에 독립적인 조각으로 만들어 더욱 유명해졌다.
로댕의 작품 중에는 작곡가 말러의 두상도 있다. 1909년 4월 말러와 그의 아내 알마는 파리의 로댕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알마의 계부 ‘카를 몰’이 의뢰한 말러의 두상 제작 때문이었다. 원래 두상은 두 점만 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카를 몰은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수고비를 깎고 대신 독점권을 포기했다. 말러의 흉상은 로댕의 후기 작품 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다. 위대한 음악가의 고뇌와 자존감을 차가운 청동에 기막히게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당시 로댕은 ‘프리드리히 대왕, 프랭클린, 모차르트를 합친 것이 바로 말러다’ 라고 예술가 답게 표현한 바 있다. 말러는 51세를 일기로 1911년 세상을 떠났다. 국립미술관 기행을 마친다.
조각 정원 주소: 6th St & Constitution Ave NW,
Washington, DC 20408
관람시간: 국립미술관 동관, 서관, 조각정원 모두
10am-5pm
<
곽노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