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6.25전쟁 75주년이 된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 전쟁으로 피난 갔던 사람들, 전쟁을 체험한 증인들이 하나 둘 점점 우리 곁을 떠난다.
어릴적 피난시절, 동네 대여섯 가구가 깊은 산속으로 피난가서 푸른나무로 엉성하게 지은 움막 속에서 생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옹기 종기 엉성하게 지은 움막집 앞에서 어느집에서 끌고 온 돼지를 더운물에 넣고 털을 뽑던 모습, 몇몇 어린 친구들과 주위에 앉아 구경하다가 더운물이 몸으로 튀어서 놀랬다고 쓰디 쓴 쓸개를 먹었던 기억도 생각 난다.
전쟁이 끝나고 가끔 들었던 동네어른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하던말, “피난와서 숨어살면서 뭐가 필요하다고 집에 내려가서 없어졌어, 인민군에 끌려갔것지, 죽었나 살았나, 않됐어, 통일되면 돌아 올라나” 라며 걱정하던 어른들의 말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같다.
이곳에서 만난 6.25참전유공자. 그는 19살 어린 나이로 전쟁에 참여, 격렬한 전쟁터에서 받은 훈장과도 같은 왼쪽 다리 종아리에 총상의 흔적을 갖고 평생을 사는 이웃이 있었다.
가끔 총상의 상처를 보여 주면서 적군과 싸울때의 이야기를 할때는 산화한 동료들한테 미안한 말부터 전한다, “참 많이 죽었어요, 소대원이 반은 죽었어요, 미안하지요, 그래도 다행히 나는 살아서 잘사는 대한민국을 보고 죽게돼서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광복절, 보훈청에서 받은 6.25참전유공자 정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허리 굽고 등 굽은 여윈 그의 몸에 헐렁한 참전유공자 정복을 입은 모습을 보며 숙연해지던 마음. 당신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있고, 우리가 민주주의와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
올 봄, 갑자기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요양원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노병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지켜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다.
요양원에서 불편함은 없는지, 대한민국 보훈요양원에서 생활을 하면 좀더 편할 수도 있을텐데, 음식은 입에 맞는지, 이제 먼 옛날의 전쟁기억, 전사한 전우들에게 미안함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6.25전쟁으로 한미동맹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역사적 사명에서 태어났다. 굴종의 평화보다는 강한 힘으로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 철통같은 한미동맹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
지금도 한국을 찾아오는 미국과 다른 참전국 6.25때 노병들은 모두가 같은 뜻을 전해준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폭력은 언제 어디서나 죄악이며 전쟁의 주동자는 세상에서 사라져야한다. 그 책임자와 가담자는 자유와 인간애가 있는 사회에 공존할 자격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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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육/뉴저지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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