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포스트 특약 건강·의료 칼럼
▶ 식품포장재·장난감 등 각종 플라스틱에 포함
▶ 호르몬 체계 교란… 태아·생식 건강 악영향
▶ “일상 속에서 되도록 플라스틱 사용 피해야”
메리야 즐라트닉은 임신 초기 여성들을 만날 때 보통 이런 조언을 한다. 임산부 전용 비타민을 복용하고, 술과 담배, 날생선을 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고위험 임신을 전문으로 하는 모체태아의학 전문의인 그녀는 일부 환자에게 추가로 경고한다. 바로 플라스틱을 피하라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플라스틱은 가구, 식품 포장, 의류, 전자제품, 심지어 공기 속까지 미국인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즐라트닉은 기본적인 부분부터 조언한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을 먹거나 마시지 말 것, 전자레인지에 플라스틱을 넣어 데우지 말 것, 고도로 가공된 음식을 피할 것 등이다.
일부 여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만, 어떤 여성들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 압도되어 무심하게 흘려듣는다. 그러나 적어도 한 번 조산을 겪은 여성들에게만큼은 반드시 알려주고 싶다고 즐라트닉은 말한다.
그녀는 전국적으로 플라스틱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소수 의사들 중 한 명이다. ‘프탈레이트(phthalates)’라 불리는 이 화합물들은 미국인의 혈액과 소변에서 거의 항상 발견된다. 그중 아홉 가지는 식품과 직접 접촉하는 플라스틱에 사용하도록 승인되어 있다. 지난 20년간 과학자들은 이 화학물질들이 조산, 불임, ADHD를 비롯해 수많은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점점 더 뚜렷하게 밝혀왔다. 특히 임신부와 태아에게 가장 큰 위험이 집중된다.
워싱턴포스트는 플라스틱 화학물질이 인간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과학자, 전직 규제기관 관계자, 업계 관계자 등 20여 명을 인터뷰하고, 지난 20년간 발표된 프탈레이트 건강 영향 관련 학술 논문 50편을 검토했다. 그 결과, 프탈레이트가 자궁 내 태아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는 강력한 증거가 드러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화학물질들은 식품, 의료기기, 개인 생활용품에 사용되고 있다.
과학자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임신 중 프탈레이트 노출이 훗날 불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특히 남성에서 그렇다. 프탈레이트는 ‘내분비 교란물질’로 분류되며, 이는 호르몬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할 수 있다. 태아는 성장과 발달을 호르몬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더욱 취약하다. 보스턴칼리지 글로벌 공중보건·공익센터장 필립 랜드리건 소아과 의사는 “임신 중 이런 화학물질이 여성 체내로 들어오면 그대로 태아에게 전달된다. 태반은 전혀 방어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 편리함 뒤에 숨은 대가프탈레이트는 흔히 ‘플라스틱 가소제’로 불린다. 하지만 그 쓰임새는 플라스틱에 국한되지 않는다. 향수를 오래 지속시키고, 로션의 질감을 부드럽게 하며, 비닐 바닥재의 탄성을 유지하는 데도 사용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프탈레이트는 이미 공기, 음식, 먼지, 심지어 혈액 속에 침투해 있다. 문제는 이 화학물질이 단순히 체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 체계를 교란하고, 태아 발달과 생식 건강에 장기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태아 발달은 정밀하게 조율된 호르몬 신호에 의해 진행된다. 임신 6주 전까지 모든 배아는 남녀 구분이 없지만, 이후 Y 염색체를 지닌 태아는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이 호르몬이 충분히 작동해야 음경과 고환, 음낭이 정상적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프탈레이트는 항안드로겐(antiandrogen) 으로 작용해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억제한다. 그 결과 태아의 항문과 생식기 사이 거리(AGD)가 짧아지고, 이는 잠복고환증·요도하열증·정자 수 감소 등으로 이어진다. 에든버러대 로드 미첼 교수는 “남성 태아는 발달의 ‘결정적 창(window of masculinization)’에서 충분한 테스토스테론이 필요하다. 이 시기를 놓치면 생식 건강 전체가 프로그램 오류에 빠진다”고 설명한다.
2005년 미국 통계학자 섀나 스완은 임신부 소변 속 프탈레이트 농도와 남아의 AGD 길이 사이의 상관관계를 처음 입증했다. 이후 유럽, 아시아, 북미에서 수천 건의 후속 연구가 이어졌고, 결과는 한결같았다. 프탈레이트에 많이 노출된 산모의 아들은 짧은 AGD와 생식기 발달 이상을 보였다.
■ 전 세계적 정자 수 감소프탈레이트 문제는 단지 일부 아기의 건강에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의 정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부터 2018년까지 45년간 전 세계 남성의 평균 정자 수는 약 50% 감소했다. 매년 1.2%씩 꾸준히 줄어든 셈이다. 정자의 농도와 운동성도 하락세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인류의 생식 능력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라고 경고한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복잡하다. 하지만 AGD가 짧은 남성이 정자 수와 질이 낮다는 사실이 일관되게 확인되고 있으며, 이는 곧 프탈레이트 노출이 생식력 감소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AGD가 평균 이하인 남성은 불임 확률이 7배 이상 높았다.
■ 뇌 발달과 아이들의 미래프탈레이트는 생식기 발달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호르몬은 뇌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태아기의 노출은 신경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르웨이의 대규모 조사에서는 임산부의 프탈레이트 수치가 높을수록 자녀가 ADHD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3배 증가했다. 뉴욕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프탈레이트에 많이 노출된 산모의 아이들이 평균 IQ 점수가 7점 낮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스테파니 엥겔 교수는 “프탈레이트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더 산만하고 과잉행동을 보였으며, 가정과 학교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영향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의 학업 성취, 생산성, 정신 건강 전반을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조산과 장기적 건강 비용프탈레이트는 출산 시기에도 영향을 준다. 6,000명 이상을 추적한 연구에서, 임신 중 프탈레이트 노출은 조산 확률을 12~16% 높였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56,000건의 조산이 프탈레이트와 관련 있다는 추정도 나왔다.
조산은 신생아 사망률뿐 아니라 장기적 발달 문제와 연결된다. 조산아는 호흡기 질환, 천식, 뇌성마비, 학습 장애 등 다양한 건강 문제에 시달릴 위험이 높다. NIH 연구자 켈리 퍼거슨은 “조산율이 15% 증가한다는 것은 전체 인구 차원에서 엄청난 일이다. 이는 단순히 가족의 고통을 넘어, 사회 전체에 막대한 의료 비용과 사회적 부담을 안긴다”고 지적했다.
■ 과학계 논쟁과 산업계의 저항프탈레이트의 위험성을 두고 과학계는 대체로 경고음을 울리지만, 산업계의 태도는 다르다. 미국화학위원회는 “프탈레이트는 안전하며, 심각한 건강 위험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동물실험에서 관찰된 극단적 노출 사례를 일반 인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수천 명의 임산부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체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시각은 분명하다. 스완은 “정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고, 조산율이 증가했으며, IQ 저하까지 나타났다. 이는 통계적 흔들림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위기”라고 말했다.
■ 느린 규제와 ‘유감스러운 대체’2008년 연방 의회는 일부 프탈레이트를 아기 장난감에서 금지했다. 그러나 식품 포장재, 의료기기, 화장품, 바닥재 등에서는 여전히 사용된다.
더 큰 문제는 대체 물질이다. 금지된 프탈레이트가 빠지면, 구조가 비슷한 새로운 화학물질이 곧바로 투입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 비슷한 내분비 교란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를 “regrettable substitution(유감스러운 대체)”라 부른다.
하버드대 러스 하우저 교수는 “우리는 끊임없이 뒤쫓는 입장이다. 해롭다는 증거가 나오면 그제야 규제하지만, 그 사이 수백만 명이 이미 노출된다”고 말했다.
■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과제개인이 할 수 있는 대책은 일부 존재한다. 플라스틱 대신 유리나 스테인리스 용기를 쓰고, 전자레인지에 플라스틱을 넣지 않으며, 가공식품 대신 신선한 음식을 선택하는 것 등이다. 향이 첨가된 제품보다 무향 제품을 고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선택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가장 큰 노출 경로가 식품 포장재나 산업 공정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 해결은 정책적 개입과 산업 차원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 인류의 미래에 드리운 그림자프탈레이트는 무색·무취이지만, 이미 우리 모두의 혈액과 땀, 신생아의 첫 대변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인류는 보이지 않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하버드대 하우저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화학물질과의 거대한 실험 속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 실험에 통제군이 없다는 점이다.”
스완 역시 경고한다. “정자 수 감소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다음 세대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 프탈레이트 문제는 결국 우리 문명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다. 더 이상 경고를 무시한다면, 그 대가는 되돌릴 수 없는 상흔이 되어 인류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이다.
<
By Shannon Osaka, Frank Hulley-Jones, Simon Ducroq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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