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끝자락, 이미 시월 초부터 단풍이 들어 늦은 줄 알면서도 가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미네와스카(Minnewaska)라 그곳을 찾았다.

뉴욕 북쪽 산자락에 자리한 미네와스카 주립공원은 절벽과 호수가 어우러져 하늘이 맞닿은 듯한 풍경으로 천혜의 자연으로 이름난 곳이다.

호수를 둘러싼 산책로는 사계절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호수를 들여다보면 고요하고 투명하며 가을이면 그 물빛 위로 붉고 노란 숲의 그림자가 흔들리게 보인다. 그건 하늘빛을 그대로 담아내니 날씨에 따라 은빛이나 청록색으로 변하기때문이다.

미네와스카라는 이름은 “계절의 빛을 그대로 품는다” 는 뜻으로 ‘맑은 물’이라는 원주민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다니 말이다.

햇살에 비추는 빛바랜 나뭇잎들이 출렁이는 황금빛 물결로 변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해가 또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단풍은 절정을 지나 떨어진 잎들이 산길을 덮고 있었지만, 그 길은 노랗고 빨간 양탄자를 깔아 둔 듯한 포근한 풍경이 감동으로 오고 마음을 더 깊이 적셨다.

그 길을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스치면 낙엽은 놀랜 새들처럼 가볍게 날아 올라 날아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따스하고, 호수 위에는 익어가는 가을의 향기가 은은히 퍼졌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그곳을 걷고 또 걷고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 향이 몸 안 깊숙이 스며들며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자연 속을 걷는다는 것은 세상의 속도를 잠시 멈추는 일이고 그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는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근처 농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골든 딜리셔스 Golden Delicious 사과를 땄다. 햇살을 머금은 노란빛 사과는 손에 쥐기만 해도 달콤한 향을 내뿜어 군침을 돌게했다.한 입 베어 물자 달콤하고 아삭한 맛이 가을의 익은 공기와 어우러져 이 계절의 마지막 향기와 맛을 그대로 담아온 듯했다.

뉴욕의 가을은 어디서나 느낄 수 있다. 센트럴 파크의 화려한 단풍도 좋지만 집 근처 공원만 걸어도 익어가는 나뭇잎 타는 냄새 속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는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

가을이란, 어쩌면 중년의 시간과 닮았다. 욕심내지 않아도 조급해지지 않는 나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순간을 눈에 담아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고 반성하게 되는 나이, 싱그럽거나 눈부시지 않아도 빛이 바래고 색이 깊어진 그 잎사귀처럼 겸허해지고 때론 마음도 단단해지고, 은은한 평화를 품게 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미네와스카의 호숫가에 서면 하늘과 물과 나무가 이루어낸 자연의 조화속에서 하나가되어 삶의 리듬을 찾아 또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햇살 아래서 더 빛나는 사과의 달콤한 향기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 내게 온다.
그것이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이다.

내년 가을에도 가장 가고 싶은곳 , 미네와스카의 숲길과 호수주변을 걷고 싶고 오색옷으로 갈아입고 나를 반길 나뭇잎 익는 냄새가 그리워 다시 찾게 될 것이다 .
그곳은 언제나 변함 없이 조용히 마음에 계절을 품어 안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가을속 미네와스카는 누구나 꼭 찾아가야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 늦가을의 정취에 취해본다.

<김미선/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