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시대에 동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하이퍼로컬(Hyper-local)’이다. 이는 기술의 유행이 아니라 시민이 생활하는 동네를 중심으로 삶의 질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미래형 도시 모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미래 도시의 해답을 도시 전체가 아닌 시민이 매일 머무는 동네에서 찾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하이퍼로컬이 각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동네에서의 삶’을 더 중요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집 가까이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생활권(슬세권) 안에서 먹고, 사고, 놀고, 쉬는 일상이 해결되면 삶의 만족도는 한층 높아진다. 반대로 작은 불편이 동네에서 발생하면 곧바로 생활의 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이퍼로컬은 바로 이 작은 생활권을 첨단기술로 정교하게 지원해 이동을 줄이고 편의를 높이며 동네의 생활 품질을 끌어올리는 도시 운영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동네의 경제와 문화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당근마켓과 미국의 넥스트도어 등의 플랫폼은 같은 동네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중고 거래와 재능 공유를 활성화하며 이웃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동네 관계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주민과 상점이 직접 연결되면서 동네 상권이 살아나고 배달과 심부름 등 동네 기반의 ‘긱(Gig) 이코노미’가 성장하며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난다. 더 나아가 서점·공방·카페·시장은 지역 고유의 감성과 문화로 자리 잡아 동네 자체를 매력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하이퍼로컬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술이 동네 곳곳에서 촘촘하게 뒷받침돼야 한다. 위치기반서비스(LBS), AI 생활 관리, 사물인터넷(IoT) 센서,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작은 도시 공간에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이 기술들이 보행 흐름, 안전 상황, 생활 수요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대응하면 동네의 생활은 훨씬 안정적이고 정교하게 운영된다. 기술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수록 동네는 편리해지는 것을 넘어 경제와 문화의 활력이 살아나고 그 변화는 도시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하이퍼로컬을 가장 시급하게 실현해야 하면서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나라다.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 지역 불균형 같은 구조적 문제는 동네 단위의 세밀한 대응을 요구한다. 동시에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AI 기술 역량과 높은 디지털 활용 능력을 갖추고 있어 동네 기반의 정밀 서비스 구현에 가장 적합하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하이퍼로컬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과 근대 도시계획이 형성되던 시기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던 한국은 기술의 발전과 생활의 변화를 연계한 동네 모델을 발전시킬 여건이 충분하지 못했다. 이제 앞선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고 동네가 도시의 중심 단위로 기능하도록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비로소 얻게 됐다. 그 해답이 바로 하이퍼로컬 기반의 ‘동네 2.0’이다.
동네 2.0은 단순히 옛 동네 기능을 복원하는 개념이 아니다. 기술 혁신을 활용해 시민의 삶을 개선하고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 시대의 실천적 해법’이자 도시의 활력과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핵심 단위로 동네를 재정립하려는 미래 전략이다. 기술은 준비됐고 생활 방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동네가 제자리를 찾으면 도시의 미래는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이 동네 2.0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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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스마트도시·건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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