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6개국 대표팀이 힘과 지략을 겨룬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아시아’. 우승은 한국이 했지만,인기는 몽골 차지였다. 몽골 전통씨름 ‘부흐’ 챔피언 어르헝바야르가 기세등등하게 처음 등장한 장면은 충격적. “몽골 제국이 세계를 정복했던 시절 유전자에 새겨진 공포가 올라온다”고 시청자들은 즐거운 엄살을 떨었다.
■ 몽골팀은 겸손하고 영리했다. 상대를 도발하는 대신 실력으로 승부했고, 피지컬 못지 않은 ‘뇌지컬’도 보여줬다. 칭기스칸 후예라는 후광, 그러나 지금은 세계 무대에서 소외된 언더독이라는 점이 결합해 묘한 매력 포인트가 됐다. “한국이 제작한 프로그램이라 불공정했다”고 일본 선수가 ‘뒤끝’을 부릴 때, 몽골팀은 “국경을 넘어 싸움을 걸지 말라”는 입장을 냈다. 몽골 출연자들은 이미 국민 영웅. 귀국해서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국경일 정부 행사에도 초청받았다. 몽골에서 넷플릭스 가입률이 치솟았고, 결승전 단체관람 이벤트도 열렸다.
■ ‘피지컬 아시아’는 “한국인들끼리 경쟁한 ‘피지컬100’을 변형해 양국 대항전을 해보자”는 몽골 제안에서 출발했다. 몽골은 진심이었다. 프로그램이 확정된 뒤 정부 차원에서 대표팀을 선발했다고. 그런 몽골팀을 응원하며 한국인들이 스스럼없이 하는 얘기가 있다. “몽골인 힘 엄청나. 포장이사 부르면 꼭 오잖아” “순박해서 험한 일도 묵묵히 한다더라”... 대등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좀처럼 할 수 없는 말이다. 윤성빈, 장미란에게 잘사는 어느 나라 사람이 “짐 잘 나르고 고분고분하게 일 잘하게 생겼다”고 하면, 과연 칭찬일까.
■ 몽골 GDP는 세계 127위(2022년 기준). 타고난 ‘피지컬’로 달러를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 오는 몽골인들은 이따금 참극을 만난다. ‘몽골, 노동자, 사망’을 검색하면 산업재해로 숨진 몽골인 사례가 줄줄이 나온다. 4월 서울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추락사, 이달 강원도 폐기물 재활용 업체에서 추락사... ‘피지컬의 그늘’이 아닐지. 예능 보면서 왜 슬픔을 떠올려야 하냐고? 몽골팀에 보낸 환호가 몽골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면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막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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