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가정상담소의 51주년 기금 마련 오찬이 많은 분들의 응원과 참여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소장으로 일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신건강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50여 년 전, 이 상담소를 시작한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 긴 세월 동안 이곳을 지탱해 올 수 있었을까?
지난 시간 동안 제가 확신하게 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담소를 찾아주신 내담자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목숨을 살리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 보람을 느꼈던 세 가지 순간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한 청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상담을 맡은 선생님이 어느 날 제게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커넥트포”라는 보드게임이었는데, 내담자의 어머니가 상담 시간에 사용하시라며 직접 기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의 이혼과 학교 내 괴롭힘으로 깊은 우울증을 겪었고, 저희는 무료 상담을 통해 그를 꾸준히 도왔습니다. 그 어머니가 건넨 작은 보드게임 하나에 담긴 마음은, 상담소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했습니다. ‘우리의 일이 결코 헛되지 않구나.’ 그날 느꼈던 벅찬 감동은 지금도 제게 큰 힘이 됩니다.
두 번째는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워크인 클리닉이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어머니로부터 긴급한 상담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직접 전화를 받아 닥터 최와의 상담 일정을 잡아드렸습니다. 몇 달 후, 그분은 저희 상담소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처음 전화를 받았던 분이 ‘정말 힘드셨겠어요. 이렇게 전화 주실 때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하셨겠어요. 정말 잘 하셨어요’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한마디가 제게 너무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분은 자신이 그 말을 한 사람이 저였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20년 넘게 상담 일을 해온 사람이라 해도, 진심 어린 한마디의 힘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요. 사람을 치유하는 시작은 거창한 치료가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생명을 구한 날의 기억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 어머니는 닥터 최와의 신뢰 속에서 몇 달 후 또 다른 자녀를 데리고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그날 닥터 최는 아이의 상태를 보고 즉시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우울증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자살 위험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처음엔 놀라고 두려워했지만, 닥터 최의 문화적 이해와 진심 어린 설명 덕분에 치료 결정에 동의하셨습니다. 그날 우리는 한 생명을 지켜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워크인 클리닉이 문을 연 이후 첫 번째 생명을 살린 날이구나.” 그 생각이 들자 감사함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왔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살리는 보람이야말로 워싱턴 가정상담소가 지난 51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보람이 있기에, 다가올 52주년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저와 직원들, 그리고 이사회 모두는 한 생명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더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한인 사회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이 곧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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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 테일러 워싱턴 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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