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근, 그리고 떡국- 사라 김 리(Sarah Kim-Lee) 3

사라 선생님의 연근 떡국
2022년 1월 유난히 추웠던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코리안 센터를 방문해 처음으로 Sarah Kim-Lee 선생님 (이하 사라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그날은 샌프란시스코 코리안 센터 주최로 설날 맞이 떡국 만들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떡국 만들기 시연을 하고 함께 나눠먹으며 설날의 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이 행사에서 나는 유일하게 매년 떡국을 먹고 자라온 한국 사람이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다른 참가자들과 공유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연근 떡국’을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연근 떡국’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연근떡국과 함께 포즈를 취한 사라 선생님
전석 매진이었던 행사의 열기만큼 참가자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나도 질세라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았던 기억이 난다. 내 옆자리에는 인도에서 온 친구, 수희가 앉았다. 그날 처음 만난 수희는 ‘안녕하세요?’ 하고 내게 한국말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던 수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고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몇 분 만에 우리는 사이좋은 언니 동생이 되어 수업에 참여했다. 자신을 코리안 푸드 스토리텔러 (Korean Food Storyteller)라고 소개한 사라 선생님은 흥미진진하고도 놀라운 연근 떡국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는 결핍과 채움의 이야기였고, 또 그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사라 선생님은 1960년대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은 태백산맥의 지맥들이 자나고, 낙동강 지류들이 흐르는 산악 기반 지형이다. 이렇게 지형적으로 바다와 멀기에 해산물보다 산채 및 농작물 중심의 식생활과 계절 저장 음식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사라 선생님은 불교 신자셨던 친할머니 덕분에 일찍부터 채식 요리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다양한 채식 요리 중 연근으로 만든 떡국이 가족과 손님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있었다. 비교적 구하기 쉬우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인 연근 떡국은 고기를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맛과 영양을 동시에 잡아준 훌륭한 채식 요리였다고 한다.
떡국은 ‘병탕(餠湯) / 병갱(餠羹)’이라는 이름으로 19세기 조선 후기 문헌인 동국세시기 (1849)에 등장할 만큼 오래된 새해 음식으로, ‘설날에 엽전처럼 얇게 썬 흰 떡을 맑은 장국에 넣고 꿩이나 닭 또는 쇠고기로 육수를 내 끓인 음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라 선생님은 길게 뽑은 가래떡은 장수를, 동전처럼 둥근 흰 떡 조각은 재복과 깨끗한 새 출발을 상징한다고 일러주며 새해에 떡국을 먹는다는 것은 한 해를 여는 의례이자 다짐이라고 일러주었다. 새해에 떡국을 먹는 전통의 의미를 알게 된 현지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기저기서 ‘와우’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전통음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방색’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에 다다랐을 땐 모두가 한식을 경이롭게 여기는 듯했다.

촬영팀을 위해 차려주신 환대의 음식
이 날의 경험은 내게 매우 소중했다. 내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익혀온 식문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또한 음식으로 하나 되는 현장에 머무르며 사라 선생님의 코리안 푸드 스토리텔러 직업이 얼마나 멋진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면서도 ‘살아 숨 쉬는 음식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때부터였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인 해외이주여성들의 음식 이야기들을 찾아가 들어보고, 하나로 모아 후대에 전달될 수 있도록 아카이빙 하겠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3년 전, 사라 선생님의 연근 떡국에서 시작된 작은 꿈은 오랫동안 물아래에 숨겨져 있던 연근과 줄기처럼 보이지 않는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그 꿈이 글과 사진으로 물 위에 피어나는 순간을 맞고 있다. 얼마 전 사라 선생님 댁에 방문했을 때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음식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지 여쭈었는데 선생님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버클리 볼에 가면 다양한 식재료가 정말 많아요. 그때 매일 다른 재료를 하나씩 맛보자, 딸이랑 다짐했었어요.”
자녀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버클리에서, 현지의 식재료를 활용해 매일매일 요리를 해온 일상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방대한 음식 이야기보따리를 채워온 것이다. 무생채가 생각날 때 파파야로 무를 대신하기도 하고, 된장국에 오크라를 넣어보는 실험도 하면서. 전통이라는 뿌리를 기반으로 정성껏 일상의 줄기를 돌보고, 나아가 오늘이라는 꽃을 활짝 피워 이야기 향기를 퍼뜨리는 일. 코리안 푸드 스토리텔러로 사방 곳곳에 향기로운 이야기를 퍼트릴 사라 선생님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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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리 선생님의 요리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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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 떡국 (2인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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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 준비물: 다시마 한 빰 크기, 중간 크기 무 1/2개, 대파 2개, 생강 한 톨, 마른 표고버섯 5개, 양파
만드는 법: 큰 냄비에 다시마, 무, 대파, 생강, 마른 표고버섯, 양파를 넣고 끓인다.
연근 떡국 준비물: 조롱이떡 (혹은 떡국떡) 2.5 컵, 연근 60g, 국간장, 소금, 채수 국물 10-15 컵, *얇게 썬 연근 두 조각과 마른 대추는 장식용으로 따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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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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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연근 껍질을 벗긴 후 식초물에 5분 정도 담가둔다. (갈변 방지 및 떫은맛 제거)
1의 연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2의 연근을 큼직하게 썬다음 블렌더에 채수를 조금 넣고 간다.
냄비에 남은 채수를 모두 넣고 끓인다.
채수가 끓으면 간 연근을 넣고 5분 정도 더 끓인다. 이 연근 국물이 끓으면 조이떡을 넣고 떡이 냄비 바닥에 붙지 않도록 잘 저어주며 익힌다.
떡이 연근 국물 위로 떠오르면 국간장을 조금 넣고,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춰 마무리한다. 이때 국간장으로만 간을 하면 국물 색이 검게 변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릇에 떡국을 담고 얇게 썬 연근과 꽃모양을 낸 마른 대추를 고명으로 얹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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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연근을 고를 땐 길쭉한 것보다 짧고 동글한 모양의 것이 좋다. 떡국떡을 사용할 경우, 갓 나온 가래떡을 사서 냉장고에 하루 둔 뒤 엽전 모양으로 썰어 쓸면 좋다. 이렇게 썬 떡국 떡은 찬물에 10분 정도 담가 두었다가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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