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지역에 한파 소식에 겨울이 없는 이곳 플로리다에도 더운 공기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연다. 창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찬 공기가 우르르 몰려들어 온다. 상쾌하다. 추운 지방과는 달리 이곳의 나무는 겨우내 옷을 벗지 않는다. 일찍 나온 잎새들이 누렇게 변해 나뭇가지를 떠나 포도를 뒹굴기는 하지만, 늦게 나온 잎새들은 파란빛을 띠고 상큼한 겨울을 맞는다. 나무들 나름의 어떤 주기가 있는지 떨어지는 잎새는 있는데 옷을 완전히 벗은 나목은 보기 힘들다. 그렇게 주춤대며 서성이다 따뜻한 봄을 맞기도 하지만, 때론 한 이틀 영하로 내려가는 날을 만나면 한 번에 모두 얼어붙기도 한다.
이제 막 시작한 겨울이라 그런지 창밖의 나무들은 아직도 푸른 잎으로 울창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차가운 공기를 폐 깊은 곳까지 욕심껏 담아 본다. 몸 안에 쌓인 나쁜 공기들이 모두 씻겨 나갈 것만 같다. 겨울 먹거리를 준비하는지 다른 때보다 바삐 움직이는 다람쥐를 눈으로 좇다가 이상한 풍경을 하나 발견했다. 뒷마당으로 향하는 포치와 그 벽 가까이에 선 나무 사이에 누런 나뭇잎 서너 장이 공중에 떠 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눈을 비벼도 보고 떴다 감기를 몇 번 한 후 봐도 여전히 나뭇잎들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멈춰 서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붙들고 있는 듯, 나의 놀란 눈길에도 나뭇잎들은 태연하다. 포치로 나가 가까이 가서 보니 족히 한자는 됨직한 거리에 대형 거미줄이 쳐져 있다.
살아있는 곤충이라면 거미줄에 걸린 그 생명이 처한 절망에 가슴 아프겠지만, 낙엽이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땅에 떨어져 이리저리 구르다, 어느 나무 밑동에 쌓여 봄날에 피어날 새 생명에 영양분이 될 여정이다. 그 길로 속히 걸음 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 서서 사색에 잠긴 듯 보이는 낙엽을 포치에 앉아 가만히 바라본다. 올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지나온 나의 2025년을 돌아본다. 무엇을 계획하고 이뤄 나가기보다는 이제까지 이룬 것들을 정리하는 나이다. 바삐 돌아가는 삶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숨을 고른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나에 대한 평가다. 힘든 시집살이 하는 친구에게 그 시어머니는 나만큼 좋은 시어머니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큰소리치시곤 하셨다. 이만 하면 잘 살았지..하며 나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다가도 친구의 시어머니 생각이 나면 화들짝 놀라 나를 다시 점검한다. 내게는 논쟁을 하는 버릇이 있다. 이견을 가진 친구와 우열을 다툴 때는 온갖 논리를 끌어와 기어코 이겨야 직성이 풀렸었다.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친구에게는 조목조목 가르치려 들었다. 그를 돕는다고 한 일이라 그 시간에 친구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는 살피지 못했다.
속도가 빠른 판단에 거미줄을 친다. 잠시 멈추어 서서 주변을 돌아본다. 내 빠른 속도로 인해 버거워하는 친구는 없는지 살펴본다. 꼭 내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분주해지는 걸음에도 거미줄을 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편안한 사람인가?
<
허경옥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