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아트는 과연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미술계의 논쟁거리가 아니다. AI로 제작된 작품이 이미 세계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 등장하면서다. 질문은 이제 “우리는 이 새로운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국내에서도 이미 2016년부터 AI 기반 체험형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관객 움직임을 시각화하거나 대화를 주고받는 작품들이 예술 안에서 기술과 인간이 결합하는 방식을?실험해왔다. 아트센터나비와 아시아문화전당이 개최한?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등이 AI 아트의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현대차의 지속적 후원도 글로벌 기업의 사회적·예술적?책임을?실천한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해외는 새로운 변화에 더 적극적이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은 엔비디아의 후원을 받아 AI로 미술관 소장품 데이터를 학습시켜 제작한 레픽 아나돌의 작품 ‘감독받지 않은’을 2022년 선보였고 이듬해 영구 소장품으로 등록했다. 관람객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미지를 경험하도록 설계된 작품이자 디지털 알고리즘을 하나의 미적 체험으로 작동하게 만든 사례다. 세계 최초 AI 아트 미술관을 표방하며 올해?개관하는 로스앤젤레스의 ‘데이터랜드’도 모두가 지켜보는 중이다. 데이터와 AI 예술에 특화된 이 공간은 관객과 작품의 지속적 상호작용을?목표로?한다.
이처럼 AI 아트는 더 이상 주변부의 실험이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이미 예술적 체험과 담론의 중심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해외 미술 기관들이 AI 아트를 수용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AI 아트는 인간의 창작 과정과 기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며 기존 예술 사조와 이미지를 학습해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각적 조합을 만들고 있다. 이는 전통 미술이 축적해온 역사와 기법의 연장선 위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실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다수의 AI 작품은 관객 참여를 전제로 한다. 예술을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의 과정으로 제시하는 점은 AI 예술의 향방을 짐작하게 한다.
문제는 한국의 상황이다. 한국에서 AI 예술은 아직 지속할 수 있는 생태계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일부 대학 연구실, 미디어아트 전시, 작가 개인 스튜디오 등에서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관련 공공 예산은 영상·게임 등 문화 산업 분야에 집중되고 기술 자원 역시 대기업과 산업·국방 영역에 집중돼 있다. 결국 전시는 단발성 이벤트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고 공공 후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AI 미학과 담론은 기업 홍보의 부속물로 흡수될 위험이 크다. 연구소와 레지던시, 장기 전시 인프라도 충분치 않으며 저작권과 소유권에 대한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기술은 있으나 이를 해석하고 축적할 문화적 장치는 부족한 셈이다.
AI 아트의 제도적 기준을 정비하고 기술 인프라를 구축해 디지털 예술의 가치를 공유하는 교육 및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과제가 됐다. 공공기관이 모든 부담을 떠안기보다 민간이 운영을 주도하고 공공이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협력 모델 역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있으나 서사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공공 후원 없는 AI 예술은 지속되기 어렵다. 지금의 선택에 따라 한국은 AI를 해석하고 창조하는 주체가 될 수도, 알고리즘을 소비하는 기술 수용국으로 남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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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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