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파스타 공작소 노순배
제아무리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다 한들, 요리의 본질은 결국 노동이며 음식은 그 노동의 산물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주방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중에서도 '면'(麵)을 다루는 일은 유독 고단하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반죽하고 치대고 숙성하고 밀고 썰어내는 손끝의 감각을 기어이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빌딩 숲 사이, 조금은 외진 곳에 '파스타 공작소'가 숨어 있다. 이름부터가 식당이 아닌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공작소'(工作所)다. 새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기분 좋은 밀가루 내음과 함께 벽면을 가득 채운 파스타 기물들이 손님을 맞는다. 그 빼곡한 풍경은 마치 파스타의 신을 위한 제단처럼 보일 정도다. 선반에는 평소 듣도 보도 못한 수십 가지의 파스타가 즐비하고, 방금 전까지 돌아간 듯한 파스타 머신과 도구들엔 주인의 열정이 묻어있다. 그사이에서 묵묵히 홀로 반죽과 씨름하고 있는 노순배(53) 셰프를 만났다.
■ "소화 잘되고 재밌어서".… 고된 노동 마다 않는 '생면 짝사랑'노 셰프는 호텔 주방에서 10여 년을 보냈고, 해비치 호텔의 이탈리안 섹션을 책임지기도 했던 잔뼈 굵은 베테랑이지만, 화려한 셰프의 삶보다는 작은 공방 겸 식당을 운영하는 고독한 삶을 택했다. 직원을 구하기 힘든 요식업계의 현실 탓에 홀로 주방과 홀을 오가며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너무 좋다며 미소짓는다. 그 웃음 뒤에는 생면 파스타라는 매력적이면서도 까탈스러운 존재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이 숨어 있다.
노 셰프의 이력은 굴곡지다. 호텔 조리학과를 나와 편입과 자퇴를 반복하며 방황하던 시절,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운명을 만났다. 2001년 무작정 떠난 이탈리아 유학길, 1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지만 현지의 맛과 한국의 현실 사이에는 거대한 괴리가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취업하고 돈을 모으면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어요. 1월부터 9월까지 일해서 돈을 모으고, 가을이면 다시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탔죠. 그걸 서너 번 반복했어요. 미쳐 있었던 거죠."
서른넷이란 늦은 나이에 호텔에 입사해 안정을 찾는가 싶었지만, 그의 열정은 퇴근 후에야 진짜로 불타올랐다. 영업이 끝난 밤 텅 빈 주방에 홀로 남아 밀가루를 치대기 시작했다. 유튜브도, 제대로 된 번역서도 드물던 시절, 원서를 뒤적이고 흐릿한 블로그 사진을 확대해 가며 혼자만의 생면 파스타 연구를 이어갔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파스타 공작소'가 탄생했다.
그가 쓰기 편한 건면이 아닌 생면에 천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제가 선천적으로 건면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요. 속이 더부룩해지거든요. 그런데 생면은 먹고 나니 속이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요."
단순한 재미라고 하기엔 그가 감당하는 노동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현재 파스타 공작소의 메뉴판에 적힌 파스타 종류만 16가지. 그 모든 면을 매일 아침 직접 반죽하고 뽑아낸다. 탈리아텔레나 타야린 같은 롱 파스타부터 오레키에테, 푸실리 같은 숏 파스타까지. 날씨와 습도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반죽의 컨디션을 맞추는 일은 매일매일이 새로운 전쟁이다.
■ 소박한 만듦새 속 꽉 찬 현지의 맛노 셰프가 추구하는 파스타는 명확하다.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는 음식이다. 재료가 이것저것 푸짐하게 많이 들어가 있거나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폼을 잡는 파스타가 아니라, 마치 국밥이나 국수 한 그릇처럼 든든하고 소박한 한 끼 식사로서의 파스타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먹었던 파스타들은 굉장히 러프해요. 투박하죠. 그런데 그 안에 모든 밸런스가 있어요. 면의 질감, 소스와의 흡착력, 적절한 간. 한국에서는 파스타에 뭔가 부재료가 잔뜩 들어가고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파스타는 면과 소스의 어우러짐이 전부거든요."
그의 철학은 '스트로자프레티'(Strozzapreti)라는 메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에서 주로 먹는 이 면은, 본래 길게 민 반죽을 손바닥으로 비벼 끊어내는 방식으로 만든다. 하지만 노 셰프는 공장에서 찍어낸 건면의 형태, 즉 'S'자 모양의 단면을 생면으로 구현해낸다. 반죽을 얇게 밀어 두 번 꼬아 만드는 방식이다.
"현지 방식대로 투박하게 비벼서 만들었더니 식감이 잘 안 살더라고요. 오히려 공장제 건면 같은 그 꼬임이 소스를 더 잘 머금고 식감도 좋았어요. 그래서 손으로 일일이 꼬아서 그 모양을 만듭니다. 미련해 보일지 몰라도, 그래야 맛있으니까요."
먹는 사람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저 편하게 파스타를 떠먹지만, 그 한 입 한 입에는 셰프의 지난한 정성과 노동이 담겨 있다. 입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질감의 차이 하나를 위해 일일이 한 땀 한 땀 파스타를 빚어낸다. 이토록 비효율적인 일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것이 노 셰프에게는 파스타를 만드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인터뷰 도중 그가 뚝딱 만들어 내어준 '살시차 오레키에테'를 맛보았다. 직접 만든 이탈리아식 소시지인 살시차와 쌉싸름한 참나물, 그리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생면의 조화는 한 입 먹는 순간 서울의 빌딩 숲이 사라지고 이탈리아 남부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게 아닌가란 즐거운 착각을 선사한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소스의 질감과 재료의 본질이 꽉 들어찬 직관적인 맛. 그가 말한 맛의 밸런스가 무엇인지 혀끝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 손님들이 밀가루 값 얼마나 한다고 파스타 한 그릇에 2만 원이 넘냐고 하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속상하기도 하지만 한 그릇에 담긴 제 노동과 시간, 그리고 재료를 준비하는 정성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버팁니다. 몸은 힘들지만, 반죽을 만질 때 가장 마음이 편해요. 그냥 이게 제 나름대로의 수행인 것 같습니다."
■ 노하우 전파해 제자 양성까지… "칠순까지 파스타 뽑을래요"그는 칠순까지 파스타를 뽑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꼿꼿이 서서 하루 종일 면을 뽑아야 하는 육체노동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그도 장담하지 못한다. "일 년 일 년이 다르다"며 씁쓸하게 웃는 그를 보며 어쩌면 우리가 이토록 정직한 생면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든다.
파스타 공작소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 생면 파스타의 매력을 전파하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쉬는 날엔 틈틈이 파스타 클래스를 열어 제자들을 길러낸다. 수강생 기수도 해를 거듭해 83기를 넘겼다. 요리 지망생부터 창업 준비자, 취미로 배우는 이들까지 수많은 이들이 이곳 공작소를 거쳐 갔다. 인생을 투자해 배운 것들을 혼자만의 노하우로 남겨둘 수도 있었지만, 그는 생면을 만지는 희열을 타인과 나누는 것에서 또 다른 에너지를 얻는다. 공작소의 불이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다.
"가르치면서 저도 희열을 느껴요. 유튜브만 보고는 알 수 없는 반죽의 텍스처, 미묘한 감각들을 직접 만져보며 깨닫게 해주는 게 제 역할이죠."
식당 운영에 클래스까지,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그는 요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탄다. 관광지가 아닌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소도시들을 찾아다니며 영감을 얻는다. 최근에 가장 좋았던 곳으로 아드리아해의 '모노폴리'(Monopoli)를 꼽았다. 이탈리아의 찬란한 기운을 내면에 담아와 묵묵히 반죽을 치대는 노 셰프는 오늘도 고독하지만 행복하게 면을 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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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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