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라이 릴리, 5년간 5억달러 투자
▶ 전세계 6곳서 운영 ‘혁신 플랫폼’
▶ 비만·당뇨 등 핵심신약 협업할듯
▶ AI기업 입주… 인프라 활용 기대
▶ “빅파마 신약 개발 허브 자리매김”
일라이 릴리의 이번 행보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아시아지역의 연구개발(R&D)의 축을 한국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는 빅파마의 R&D 플랫폼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한국의 혁신 생태계가 도약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릴리가 이번 투자를 통해 한국에 설립할 릴리 게이트웨이 랩스는 전 세계 6곳에서 운영 중인 공유 혁신 플랫폼이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이자 전 세계 일곱 번째 거점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아시아 거점 구축 시 싱가포르와 일본을 우선순위로 두었던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을 최우선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한국이 보유한 임상 파이프라인의 질적 성장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현재 국내 임상 파이프라인 순위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이번 투자의 핵심은 릴리가 보유한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의 한국 이식이다. 이미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 등 주요 바이오 클러스터에서 가동 중인 게이트웨이 랩스는 유망 바이오 기업에 단순한 실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릴리의 R&D 전문성을 공유하고 전임상부터 임상 통합 단계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종합 인큐베이팅’ 방식이다. 한국에 조성될 플랫폼 역시 이러한 체계적인 기술 지원 모델을 그대로 이식받아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파이프라인으로 성장하는 핵심 기지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전략적 행보의 배경에는 한국 바이오 기업의 독보적인 플랫폼 기술이 자리한다. 알테오젠(하이브로자임), 리가켐 바이오사이언스(컨주올), 에이비엘바이오(그랩바디-B) 등 글로벌 표준으로 인정받은 원천 기술들은 한국 바이오 산업의 위상을 증명하며 빅파마들이 한국을 아시아 핵심 거점으로 낙점하는 결정적 유인책이 됐다는 분석이다.
릴리는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핵심 R&D 영역 전반에서 국내 기업들과 공격적인 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만과 당뇨(GLP-1), 알츠하이머 등 신경질환, 면역항암제 분야가 핵심 타깃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펩트론과 인벤티지랩 등 장기 지속형 주사제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의 협업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신경질환 분야에서는 이미 파트너십을 맺은 에이비엘바이오와의 추가적인 기술 융합 모델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릴리의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전략이다. 릴리는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공동으로 AI 혁신 랩을 구축하고 자체 머신러닝 플랫폼인 ‘릴리 튠랩(Lilly TuneLab)’을 운영하는 등 AI를 활용한 신속한 후보물질 발굴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릴리가 축적한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AI 모델로 고도화하고 있는 만큼 기술력을 갖춘 국내 AI 신약 개발 기업들이 게이트웨이 랩스에 입주해 릴리의 인프라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플랫폼과 결합한다면 신약 후보물질 탐색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전망이다.
패트릭 존슨 릴리 인터내셔널 사업 총괄 대표는 “이번 협약이 한국을 제약·바이오산업 글로벌 리더로 성장을 돕고, 혁신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개선 등 환자 치료 및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빅파마의 한국행은 일라이 릴리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로슈는 최근 한국에 71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확정하고 데이터 중심의 정밀 의료 생태계 구축에 나선바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국내 연구진과 밀착 협력하며 차세대 혁신 기술 발굴에 역량을 쏟고 있다. 단순한 시장 확보를 넘어 한국을 신약 개발의 핵심 파트너로 낙점한 것은 국내 바이오 기업이 보유한 기술적 잠재력과 세계적 수준의 임상 인프라를 높게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연쇄 투자는 한국이 글로벌 제약·바이오 공급망 내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혁신 거점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국내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검증된 ‘동반 성장 모델’이 한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국내 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한국이 단순한 수탁 생산을 넘어 글로벌 빅파마들의 아시아 혁신을 주도하는 필수적인 거점이자 신약 개발의 허브로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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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은·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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