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대학 스포츠 연맹 가입하고 세계 대학 연맹 태권도 대회 개최
▶ 미국의 대학에서 세계로

1964년에 열린 뉴욕 박람회 (New York World Fare)의 유도 선발전에 한국에서 받은 단증이 인정되지 않아 하얀띠를 매고 대회에 참가해 준우승을 차지한 민경호 교수. 이 대회 성적으로 UC 버클리 교수 심사에서 자격을 인정받아 UC 버클리에 정착하게 된다.
연재 목차
1. 한국전쟁과 어린 시절
2. 미국 유학과 버클리 대학에 체육 교수 채용
3. 태권도 세계화의 불씨
4. 미국의 대학에서 세계로
5. 태권도의 올림픽 입성을 위한 민교수의 노력
6. 버클리 대학의 태권도 교육이 영구 보존되다.
7. 민경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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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가을 학기부터 시작된 UC 버클리에서의 생활은 녹녹치 만은 않았다. 민교수는 낮에는 체육학과 수업의 일종인 무도 교육 시간으로 0.5학점짜리 정규 수업을 하고 저녁에는 클럽에서 유도와 태권도를 가르쳐야 했다.

1996년 러시아 피터스버그에서 열린 세계 대학 연맹 태권도 대회 당시 러시아를 방문한 민경호 교수(오른쪽에서 3번째)와 관계자들.
UC 버클리에는 여러 단체에서 파견한 사범들이 독자적으로 방과 후 무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레슬링을 비롯한 기존의 프로그램들이 체육관을 사용하고 있어서 유도나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곤 하였다. 9시가 지난 시간부터 시작해서 11시쯤 운동을 마치고 나서는 제자들과 함께 대학 앞의 텔레그라프에 있는 피자집에서 뒤풀이를 하곤 하였다고 한다. 그가 가르치는 클래스가 커지자 시간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의 프로그램들은 중요 시간대를 차지하게 되었고 다른 프로그램들은 늦은 시간대로 옮겨지게 되었다. 일본계 유도 사범들이나 한국계 태권도 사범들이 제자들을 시켜서 그를 방해하려고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모든 활동들을 지혜롭게 정리하였다.
1975년 제2회 세계 태권도 대회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그는 대학 분과 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대학생을 위한 국제 대회를 미국에서 열려고 하였지만 한국의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1983년 국민대학에서 14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회 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대학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서 세계대학스포츠연맹(FISU: Federation internationale des Sports Universitaires(불어); World University Sports Federation)의 산하단체인 미국 대학 스포츠 위원회 (USCSC, United States Collegiate Sports Council)를 통해 국제 대학 스포츠 연맹에 가입하고, 이 단체의 인준을 받아서 1986년에 UC 버클리에서 세계 대학 연맹 시합을 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 시합은 명실상부한 국제 대회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대회에는 21개국의 대학 선수들이 참석했다. 김운용총재, 락 캠퍼너(Rock Campana) 국제 대학 스포츠 연맹의 사무총장등 많은 귀빈들이 참석한 대회였다. 이 대회는 서울에서 열린 1회 대회처럼 세계연맹이 주최한 시합이 아니라 국제 대학 스포츠 연맹이 주최한 시합으로 격상되었던 것이다. 이 대회를 마치고 그는 국제 대학 스포츠 연맹의 집행위원회로부터 시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이 단체의 태권도 기술 위원장(Commissioner)으로 추대된다. 그는 2006년 은퇴할 때까지 이 직책을 보유했다. 현재는 그의 후임인 안창섭 교수가 이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후 2년마다 세계 대학 태권도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2002년 UC 버클리에서 이 대회를 두 번째 열면서 그는 새로운 계획을 하게 된다. 그것은 대학생들의 올림픽인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태권도 종목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민교수는 이 대회에 조지 킬리안 (George Killian) FISU 회장, USOC의 빌 히블(Bill Hybl) 세계연맹 부총재, 미국 대학 스포츠 협회장, 국제 대학 스포츠 협회 집행위원 등을 대거 초대한다. 이렇게 태권도를 대학생들의 올림픽인 유니버시아드의 정규종목(compulsory discipline)으로 넣기 위한 그의 노력의 댓가로 태권도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선택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다. 몇 년을 거쳐서 드디어 2017년 대만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다. 유니버시아드는 2023년을 기해 세계 대학 게임(World University Games)로 바뀌었다. 2027년에는 충청도에서 이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태권도가 겨루기 중심의 스포츠가 되어 무도의 정신을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는 태권도의 품새를 태권도 시합의 한 종목으로 넣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2009년에 세르비아 유니버시아드 대회부터 태권도 품새가 정식종목으로 대두하게 된다. 현재는 세계연맹 주도로 세계 품새 대회가 열리고 있다. 언젠가는 올림픽에도 등장하기를 희망한다. 이것도 민교수의 큰 업적중의 하나이다. 그는 이렇게 태권도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이렇게 태권도가 대학에서부터 세계로 뻗어 나가도록 흐름을 만들어 놓은 그는 팬암 태권도 협회의 창설과 중국에 태권도를 보급하는데도 힘을 쏟는다.
1986년 아시안 게임에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되자, 10개의 메달이 달린 메달 박스가 된 태권도를 중국도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된다. 중국 북경의 체육회는 UC 버클리 태권도 팀을 초청하여 베이징, 항저우, 그리고 상하이에서 1985년 6월 17일부터 27일까지 태권도 시범을 하도록 한다. 북경 대학이 UC 버클리 대학과 1974년 자매결연을 맺었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행사는 북경대의 주선으로 실현되었다. 민경호 교수가 단장, 이무용 관장이 팀고문으로 버클리 대학생과 함께 27명이 참가하였다.
중국은 1949년 기존의 무술체계를 바탕으로 체조와 비슷한 체력단련용으로 ‘우슈’로 개편하여 보급하고 해외에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권도가 아시안 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올림픽에서도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들은 실리에 집중하게 된다. 1990년에는 자기 나라에서 아시안 게임을 치러야 할 입장인 중국은 태권도에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교수가 UC 버클리 팀 선수들을 데리고 북경에 가자 북경체대의 교수들이 태권도는 중국에서 유래한 무술이라고 슬쩍 자신들의 우월감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민경호 교수는 “동양에서는 모두 쌀을 주식으로 한다. 쌀이 어디서부터 왔던 간에 서로 다른 토양과 기후에서 기른 쌀을 모두 중국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현답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그의 대답에 만족해 했고 결국은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사범을 초청했으나 짧은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고, 현재 대한 태권도 협회 회장인 양진방교수가 장기체류를 하면서 태권도를 전수하게 된다. 이후 중국 태권도는 급성장을 하여 메달권에 도달한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시카고에서 1977년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치러진 제3회 세계 태권도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그의 유도 동료인 신경선씨가 행사를 주관하였다. 이 대회를 마치고 그가 회장으로 있던 북아메리카 태권도 협회(North America Taekwondo Union)를 중심으로 팬암 협회를 만들게 되었다. “코 큰 사람을 회장으로 만들라”는 김총재의 제안에 따라 신경선씨의 유도 제자인 댄 마로 (Dan Marrow)를 회장으로 그가 사무총장으로 협회를 구성하였다. 팬암 게임에서 아시안 게임보다 먼저 태권도가 인정이 된 것이다. 1회 대회는 멕시코 시티에서 문대원 관장이 주관하기 로 한다. 1981년에 2회대회가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있었는데 그는 만장일치로 팬암 연맹 회장으로 추대된다. 하지만 김총재의 “코 큰 사람” 에 대한 선호도 때문에 그는 3개월만에 회장직을 사임하고 데이빗 리빈스 회장에게 자리를 넘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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