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다. 꽃집 앞에 카네이션이 쌓이고, 한인 교회와 커뮤니티 단체마다 가족 행사 현수막이 나부끼는 계절이다. 미주 한인 가정은 지금 실제로 괜찮은가?
이민 1세대의 헌신, 1.5세와 2세대의 눈부신 성취, 이것은 한인 사회가 세상에 내보이는 자랑스러운 얼굴이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오래되고 풀리지 않는 균열이 있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식탁에 앉아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다른 우주의 문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균열을 흔히 ‘유교 문화 대 미국식 개인주의'의 충돌로 단순화한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정확하지 않다. 오늘날 이민 1세대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의 유교 질서를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니다.
그들은 1960~80년대 한국의 ‘압축 근대화' 시대에 교육받은 세대다. 가족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자녀의 성공이 곧 부모의 존재 증명이었으며, 권위는 설명 없이 복종을 요구했다. 이것은 순수한 유교적 전통이라기보다, 생존과 발전을 향해 질주하던 시대가 만들어낸 '기능적 권위주의'에 가깝다.
반면,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성장한 자녀 세대는 다르다. 비판적 사고, 감정의 언어화, 동의에 기반한 관계, 개인 경계(boundary)의 존중, 이것이 그들이 내면화한 관계의 문법이다. 이 두 문법이 충돌할 때, 갈등은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 가치관의 충돌이 된다.
문제는 어느 쪽이 옳으냐가 아니다. 두 방식 모두 각자의 맥락에서 기능했으며, 동시에 각자의 맹점을 안고 있다. 부모 세대의 방식은 응집력과 헌신을 낳았지만, 개인의 내면을 억압했다. 자녀 세대의 방식은 자율성과 자기표현을 꽃피웠지만, 때로는 책임과 연대를 희석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동양의 고전적 관계 윤리에서 '예(禮)'는 단순한 형식적 예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계 안에서 각자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알고 실천하는 것, 즉 ‘역할의 책임성'을 의미했다.
그 핵심은 수직적 복종이 아닌 상호적 의무였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할 의무가 있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할 의무가 있다. 백성을 보살피는 군주의 의무가 있어야 신하의 충성을 기대할 수 있다.
실천의 언어로 옮기자면 이렇다. 자녀는 부모를 단순한 ‘울타리'나 ‘스트레스 원인'이 아닌,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인생의 선배'로 바라볼 것. 부모는 자녀를 완성해야 할 프로젝트나 자신의 연장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할 것. 그 인식의 전환이 먼저이고, 소통 기술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개별 가정의 몫만이 아닌 미주 한인 커뮤니티 전체가 함께 풀어야할 과제다.
첫째, 가정 안에서 풀기 어려운 갈등을 커뮤니티 차원의 상담 프로그램과 세대 통합 세미나로 풀어야 한다. 부모에게는 감정을 언어화하는 현대적 소통법을, 자녀에게는 부모 세대가 살아낸 역사적 맥락과 관계 윤리의 긍정적 자산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 미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가 중요한 만큼, 공동체에 대한 의무 역시 중요하다. 이 균형 감각은 한인 사회의 정치적 역량 신장과도 직결된다. 권리만 아는 시민은 약하고, 의무만 아는 시민은 억압받는다.
셋째, 혈연 중심의 폐쇄적 가족주의를 넘어, 지역 사회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더 넓은 의미의 가족망을 구축해야 한다. 고립된 노인 세대, 문화적 정체성 혼란을 겪는 청소년, 1인 가구를 아우르는 커뮤니티 안전망, 이것이 오늘의 조건에서 ‘효(孝)'와 ‘인(仁)'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하나의 가치를 버리고 다른 가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의 질서에서 책임과 연대를, 현대의 평등에서 자율과 공감을 취해 새로운 문법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한인 공동체만이 해낼 수 있는 창조적 종합이 아닐까 한다.
자기중심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개인,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질서 있는 가정, 폐쇄적이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공동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지향하는 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두 세계의 언어를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한인 디아스포라에게 주어진, 어쩌면 특별한 소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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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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