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많은 한인들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내가 번 돈을 어디에 쓰는 것이 가장 의미 있을까?"
좋은 차, 넓은 집, 자녀의 명문대 학비, 이 모든 것은 분명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진정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이름이 새겨진 건물 하나보다, 수십 년 후에도 살아 숨 쉬는 문화와 정체성의 불꽃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오래 가는 유산이 아닐까.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언어를 버리고, 이름을 바꾸고, 익숙한 음식과 명절을 뒤로 한 채 주류 사회에 스며드는 것을 ‘적응'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문명을 만들어낸 것은, 모든 이민자들이 자신을 지워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일랜드인이 그들의 흥을, 이탈리아인이 그들의 예술혼을, 유대인이 그들의 학문적 전통을 미국이라는 용광로에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인, 라티노, 아시안의 고유함들이 충돌하고 섞이면서 오늘의 미국 문화가 탄생했다. 한인이 한인임을 내려놓는 것은 미국을 위한 희생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미국답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 하나를 지워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동화(同化)는 기여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문명은 언제나 다른 문화와 만나는 접경(接境)에서 피어났다.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다. 상품과 사람이 서로 이동하면서 동서양의 철학, 의학, 예술, 종교가 교차하여 전혀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뿌린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K-팝, K-드라마, 한식, 한국의 미학은 수천 년의 고유한 뿌리에서 출발하여 동시대 세계와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순수함을 지키겠다고 문을 닫았다면 결코 탄생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래서 한인 커뮤니티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것을 미국 사회에 당당하게 내놓을 때, 우리는 단순히 소수민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문화 진화의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이 2세, 3세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일을 “과거에 대한 향수"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오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떤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정체성이 확립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아이는 다른 문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포용하며, 다양한 세계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이중 언어 구사자는 단순히 언어 하나를 더 아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사고 체계를 넘나들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을 갖게 된다.
한국인의 정서와 미국인의 사고를 동시에 지닌 세대는, 어느 한쪽만 가진 사람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가교(架橋)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비즈니스이기도 하고, 외교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가 세상을 더 넓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룬 성공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먼저 온 이민자들이 닦아 놓은 길 위에서, 커뮤니티의 보이지 않는 응원 속에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제 그 성공을 어디로 돌려보내야 할 것인가.
한인 커뮤니티의 문화 교육 기관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전략적 선택이다. 한국어 학교를 세우고,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한인 예술가와 학자들이 미국의 주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 이 모든 것이 한인 커뮤니티를 단순한 이민자 집단이 아닌, 미국 사회를 이끄는 문화적 역량으로 성장시키는 씨앗이 된다.
우리가 한인임을 지키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우리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자양분을 땅속 깊이 내려보내기 위해서다. 뿌리 없는 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일수록 가지는 더 넓은 하늘로 뻗어나간다.
그래서 우리의 성공이 진정 값지기를 원한다면, 다음 세대의 정체성 교육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쩌면 미국에, 그리고 인류에 남길 수 있는 미주 한인들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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