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일꾼들을 내 손으로 뽑는 지방선거가 처음 시작된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출발로 의미가 컸다. 첫 지방선거 때부터 선거 공보물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 아래 모든 유권자 가정에 배달된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조직·자금력에 따른 후보자별 홍보 격차를 줄이고 무분별한 벽보와 유인물 살포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지금도 선거 공보물 배달은 여전하다. 올해 지방자치단체·재보궐선거에서 총 7770명이 입후보해 관련 홍보물이 담긴 2400만 개 봉투가 각 가정에 배달됐다. 시도지사·군수·구청장, 광역·기초의원, 비례대표, 교육감은 물론 재보궐선거까지 겹치면서 유권자 한 사람이 받아 보는 공보물이 수십 쪽에 달한다.
■하지만 알맹이는 보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공보물이 허다하다. 공보물이 너무 두꺼워 우편함에 넣지 못해 현관 바닥에 나뒹굴기도 한다. 후보 간 비교는커녕 훑어보기조차 벅찬 ‘공보물 공포증’이라고나 할까. 국민의 혈세 300억 원이나 쏟아부은 선거 공보물이지만 이를 정독한다는 유권자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참다못한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1일 ‘스마트 선거 문화’ 깃발을 들었다. 종이 무게를 줄여 지구를 살리고 새는 돈을 막자는 취지다. 종이 공보물은 단계적으로 없애고 온라인으로 공약을 확인한 유권자에게 전자 쿠폰 같은 인센티브를 주자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종이 공보물 없는 선거’ 주장이 처음은 아니다. 22대 국회에서도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물론 종이 공보물을 단칼에 없애면 고령층과 정보 취약 계층 등에게 선거 정보의 공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열람을 기본으로 하되 종이 공보물은 원하는 사람만 신청하는 식의 절충안도 고민해볼 만하다. 1995년 이후 30년 넘게 유지돼온 해묵은 관성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수백억 원을 들여 만든 선거 공보물이 제대로 읽히지 않고 버려지는 낭비를 마냥 방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영일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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