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가 다가오니 다시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1863년 조선왕조 고종임금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할 당시 일본에서는 덕천막부시대에서 명치유신으로 향할 때였다.
어린 아들을 왕위에 앉히고 실권을 장악한 대원군이 고집스러운 쇄국정책을 강행할 때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로 변모하는 명치유신에 성공했다. 19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이렇게 시작됐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망하고 한국은 해방이 됐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다시 일어나고 한국은 좋은 기회를 놓치고 민족 비극을 자초했다. 한국은 일본에 의해 짓밟히고 끊어진 조선왕조의 명예회복을 못 시키고 친일세력을 그대로 득세시키는 얼빠진 잘못을 범했다. 정치, 경제, 교육 및 문화 모든 분야에서 친일파들이 ‘지도자’로 등장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한국의 이런 꼴을 지켜본 일본이 그들의 식민지정책 실효성을 확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이승만과 친일세력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분단 반공 이데올로기로 국민들을 세뇌시켰다. 이 반공 이데올로기가 50년 동안 한국사회를 나사 조르듯 짓눌러왔다. 다행히 정권교체로 이제 독재의 나사는 풀리기 시작했다. 이데올로기의 질곡에서 벗어나 남북화해의 길이 자주적으로 열렸다.
그동안 수구세력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미루어왔던 여러 분야의 개혁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개혁작업에 저항하는 수구세력의 음해가 계속되고 있다. 독재정권 아래서의 명령에 따르는 나사 조르기에 익숙해진 수구논객들이 민주사회의 다양성을 나사풀린 난맥상이라 왜곡한다.
특정수구신문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북 대결로 나라의 평화가 깨져도 할 수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나라가 신문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 사명에 충실한 행동의 보장이지 소수 기득권을 위한 왜곡된 보도의 보장이 아니다. 개혁의 주역이 되어야 할 배운 사람들이 오히려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 독재의 주먹이 무서워 말없이 따르던 배웠다는 사람들이 민주의 관용에는 투사인양 목청을 높이는 비겁한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좋은 조건에서 편하게 사는 이들이 파렴치한 집단이기주의로 개혁작업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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