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를 바라보는 미국과 한국의 인식 편차를 가장 확연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올림픽 순위 집계 방식이다.
미국은 금메달과 은메달, 그리고 동메달에 차이를 두지 않고 전체 메달을 더해 순위를 매긴다. 반면 한국식 집계방식은 금메달 우선이다. 금메달만 많으면 무조건 전체 순위에서 앞에 놓는다. 은메달, 동메달은 금메달 수가 같을 때나 의미를 지니는 부차적 획득물 정도로 취급된다.
그러다 보니 금메달 딴 선수는 금세 국민적 영웅이 되지만 다른 선수들은 별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메달색에 따라 지급되는 평생 연금액수도 하늘과 땅 차이여서 선수들은 지나칠 정도로 금메달 집착증을 나타내곤 한다.
지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이런 비뚤어진 의식을 보여주는 추태가 곳곳에서 연출돼 한인들을 낯뜨겁게 했다. 경기에서 패한 후 상대 선수와의 악수를 거부하거나 심판에 거칠게 항의하고 합동 기자회견에도 불참하는 등 비뚤어진 매너를 보인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시상대에 올라서 눈물을 훔쳤는데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통한과 자기 분노의 눈물이어서 보는 이들을 민망하게 했다.
반면 은메달을 딴 많은 외국 선수들은 시상대에서 환한 표정 속에 웃거나 기쁨의 눈물을 흘려 대조적이었다. 특히 레슬링 수퍼헤비급 결승에서 은메달을 딴 미국의 매트 가파리 선수가 결승전 패배 후 자기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미국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금메달 지상주의’를 앞세우다 보니 미국식 방식으로 집계한 한국의 순위가 금메달 우선으로 집계할 때보다 더 높아지는 등 올림픽 순위 산정에서도 우스꽝스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그렇다면 어떤 색의 메달이 가장 큰 만족을 줄까. "당연히 금메달"이라는 대답이 나오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한 심리전문가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동메달리스트’들의 행복도가 가장 높더라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금메달이 주는 기쁨은 물론 크지만 순간적이고 너무 자극적이어서 생각보다 장기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권 당첨의 감격과 짜릿함이 오래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듯 싶다. 은메달리스트도 그런 대로 만족도가 높지만 마지막 패배의 잔영 때문에 대단히 높은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동메달리스트들은 행복해 할뿐 아니라 그것이 상당히 오래간다는 게 조사결과이다. 이들은 대부분 메달을 땄다는 그 사실 하나로도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 기분은 짜릿하진 않아도 잔잔하다.
사상 최대인 199개국 1만5,000여 선수들이 참가한 시드니 올림픽이 오늘 밤 개막된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지난 4년간 각고의 땀을 흘린 선수들은 메달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고 세계인들은 이에 열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올림픽을 즐기고 그 감동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메달색만 보지 말고 선수들의 스토리를 읽어야 한다. 그 속에 올림픽만이 줄 수 있는 진정한 감동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살벌한 사회적, 경제적 논리 속에 많은 사람들이 위기감과 패배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1등은 하나일 수밖에 없는 법.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라면 그것이 크던 작던 간에 자족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동메달리스트들의 만족은 모두에게 이같은 교훈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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