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헌정사상 최초의 ‘법선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안고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 W. 부시의 앞에는 간단치 않은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들 가운데 그가 처리해야 할 최대의 과제는 뭐니뭐니 해도 국민통합이다. 그는 유권자들의 직접 투표에서 패하고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박빙의 차로 승리를 거둔 ‘소수파 대통령’일뿐 아니라 전임자인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지적했듯 "연방대법원의 재개표 중지결정으로" 백악관 열쇠를 넘겨받은 ‘법선 대통령’이기도 하다.
정권의 정통성에 취약점을 지닌 부시는 당선확정이후 기회가 닿을때마다 "국론의 분열자가 아닌 통합자"가 되겠다고 강조했지만 중앙무대에서의 정치경험이 전무한 그가 민주당과 공화당이 팽팽한 세력균형을 이룬 의회를 요리해가며 ‘대결’이 아닌 ‘화합’의 정치를 이끌어낼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의 국론통합 의지가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정치권이 따라주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권의 분위기나 여건은 그리 희망적이 못된다.
현재 연방상원의 의석분포는 50-50, 연방하원의 세력판도는 공화 221석, 민주 211석으로 짜여져 있다. 정치 신참인 부시가 이런 험악한 여건속에서 국민통합을 이루어낼만한 고도의 정치력을 갖추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에게 주어진 두 번째 과제는 경제다. 미국의 경제는 전임 민주당정권과 일부 경제학자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성장에 강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연방은행준비제도이사회가 파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만 보아도 미국경제의 진행상황을 대충 짐작할수 있다.
하지만 부시로서는 클린턴을 탓할 입장이 못된다. 누가 뭐래도 클린턴은 재임기간중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8년전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진 경제를 후임자에게 물려주었다.
8년전 클린턴은 부시의 아버지인 41대 대통령 조지 부시로부터 험집투성이의 경제를 넘겨받았었다. 당시 미국경제는 기록적인 누적 적자와 경기침체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92년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었던 부시가 아칸소의 애송이에게 덜미를 잡힌 것도 경제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향후 10년간 무려 6조달러의 재정흑자가 예상되는 다이내믹한 경제를 부시에게 선사했다.
여기에 허점이 있다. 클린턴은 만신창이 경제를 부활시킨 공로자로 평가받았지만 그가 취임할 당시 미국경제는 이미 회복기에 들어선 상태였다. 경제학자들은 미국경제가 부시재임시절인 91년 3월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부시는 한창 잘 나가던 경제가 하락국면에 접어드는 시기에 백악관에 들어왔다. 하필이면 경기침체주기에 맞춰 대통령이 된 탓에 자책점을 내준게 아니면서도 집권초반부터 괜스레 점수를 깍일수 있다.
경제팀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보여줄지 알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부시의 당면과제중 하나인 경제가 만에 하나라도 경착륙할 경우 그의 정치적 입지는 임기초반부터 숨막히게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강규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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