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의 본원적 한계는 자연과학과 달리 실험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화학에서는 분자의 질량 변화나 다양한 조합으로 무제한에 가까울 정도의 실험이 가능하며 생리학에서도 실험용 쥐를 통해 수많은 실험을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다른 조건들은 그냥 놔둔 채 한가지 조건에만 변화를 준 뒤 그 결과를 유추해 보는 극히 간단한 실험조차도 불가능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고 이러한 제약 때문에 사회과학이 무용지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약점이 바로 사회과학의 장점이자 사회과학도를 매료시키는 주요 포인트라면 한 사회학도의 지나친 강변일까?
실험이 불가능한 사회과학은 그 대신 가설을 세워보고 상상도 해보며 또한 비전도 제시해봄으로써 진리로 향한 끝없는 역정을 계속한다. 소위‘그렇지만 만약에…’라는 의문의 꼬리를 달며 미지의 세계 속으로 빛을 비춰본다. 인류문명의 전진은 끝없는 지적 동경과 호기심의 산물이 아닌가?
세속적인 삶에서도 피상적으로만 사물을 봤을 때는 약점같이 보이던 것들이 나중에 내용을 알고 나면 사실은 장점이었던 경우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는 경우가 많다.
조상들이 40대 동안이나 대대로 지키고 살던 땅을 처음으로 박차고 나온 나는 우리 집안에서는 분명히 돈키호테(Don Quixote)아니면 ‘괴상스런 별난 놈’임에 틀림없다. 5년 정도 유학생 신분으로 있다가 학교를 마치면 반드시 돌아간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은 어디 갔으며 후손 대대로 미치게 될 가히 빅뱅(Big Bang)이나 다름없는 결단의 의미를 몇 차례나 깊이 생각해 봤던가? 미지의 후손들에 미칠 영향은 제쳐놓고라도 나 자신 지난 30년을 광주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잘 보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 보낸 30년을 동시에 광주에서 보낼 수 없는 절대 제약 때문에 원천적으로 두 생활에 대한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동시 출현 불가능성의 의미는 섬뜻해지기까지 한다.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 더 흥미롭지 못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미국에서 보낸 시간은 선택을 통한 현실인데 택하지 않은 가정과 어떤 의미 있는 비교가 가능한가? 무의미한 일에 불과하다. “너 같은 놈, 한국에 나왔으면 벌써 죽었어!”라던 한 친구의 말이 머리에서 빠져나가지 않는다. 어떤 절대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 데 현실과 가정을 비교하려는 시도 자체가 애당초 무리다. 점점 미궁에 빠진다.
미국에서 산 세월을 되돌아보면 사람 살지 않는 섬에서 지낸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뿌리째 뽑아서 외지에 옮겨졌지만 새 환경에서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시간이 태반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광주는 떠났으나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한’상황에서 정신적 방황이 심했고 또 기간도 상당히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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